"무궁화를 깊이 알지 못하고 가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무궁화를 잘 가꾸려면 군자처럼 길러야 한다. 천하게 가꾸면 천하게 자라고 군자처럼 가꾸면 군자와 같이 자라는 것이 무궁화의 특성이다."
무궁화에 관한 식물학적, 사회적 특성을 망라한 식물학자 송원섭씨의 책 ‘무궁화: 무궁화란 어떤 꽃인가’ 서문에 등장하는 글귀다. 피고 졌다가 다시 피는 깨끗한 꽃, 가꾸고 손질하는 만큼 아름답게 자라는 꽃을 저자는 ‘군자와 비슷하다’고 서술했다.
달맞이꽃이나 박꽃처럼 무궁화도 폈다가 진 후 때가 되면 다시 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무궁화의 수명은 단 하루에 불과하다. 자정 즈음 봉오리가 벌어져 해 뜰 무렵 활짝 피고, 정오를 기해 점차 오므라들어 해질 무렵이면 완전히 꽃잎을 다문다. 하루를 지낸 무궁화는 다음 꽃이 펴기 시작하는 자정 즈음 조용히 땅으로 내린다.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을 뜻하는 ‘무궁화’라는 이름과는 달리, 하루 사이 완전한 삶을 마무리하고 새 꽃에게 자리를 내주는 셈이다.
꽃이 일찍 지고 새 꽃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크기와 종자에 따라 하루에 피는 무궁화 수는 한 그루 당 20~50여 송이로 다양하다. 7월 중순에서 9월말까지 약 100일 동안 폈다가 지기를 반복하면서 한해 2,000~5,000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씨방이 그대로 붙어있다가 10~11월쯤 씨앗을 맺는다.
무궁화는 세계적으로 250여종, 우리나라에만도 70여종이 자란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 가운데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삼을만한 형태를 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무궁화가 국화로서 지녀야 할 가장 큰 특징은 한 가운데 도드라지게 붉은 부위를 일컫는 ‘단심’이다. 우리나라 원조 식물학자로 꼽히는 임경빈 박사는 저서 ‘나무백과’에서 "무궁화 중심부의 붉음은 정열과 나라사랑을 나타내는데, 이것이 불꽃 모양으로 꽃잎을 따라 방사하는 것은 발전과 번영의 상징"이라고 단심의 의미를 설명했다.
산림청은 1991년 8월 ‘국화로서의 무궁화’를 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무궁화 재배자와 식물학자들은 장시간 토론 끝에 우리나라 전통 무궁화는 ‘단심을 지닌 홑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꽃잎의 색에 대해서는 결국 결론을 짓지 못해 ‘백단심계(흰 꽃잎)’ 또는 ‘홍단심계(분홍 꽃잎)’라고만 잠정적으로 정해둔 상태다.
겹꽃보다는 꽃잎이 다섯 개인 홑꽃을 좋아하는 것은 오행 오복 오곡 등 우리나라 국민이 숫자 5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5개처럼 보이는 꽃잎의 뿌리는 사실 팔짱을 낀 것처럼 하나로 붙어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송원섭씨는 이를 "단심보다 더 깊은 꽃잎의 근원에서 서로 얼싸안은 ‘통꽃부리’ 형태로 어려울 때 단합하는 우리 민족의 외유내강 정신을 상징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궁화 꽃은 꽃자루, 부꽃받침, 꽃받침, 꽃잎, 수술통, 수술, 암술대, 암술머리, 씨방으로 구성돼 있어 꽃 한 송이로 완전한 모양새를 이룬 양성(兩姓)의 완전화다.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로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 히비스를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뒤에 붙는 시리아쿠스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임을 일컫는다. 현재 시리아에는 무궁화가 없기 때문에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는 설도 있었으나, 최근 시리아 부근에서 기원전 25년 경 만들어진 은(銀) 동전에 무궁화 문양이 새겨진 것이 발견돼 아주 오래 전에는 무궁화가 재배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무궁화 학명이 정식 결정되기 전에는 ‘알시아 로세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그리스어로 ‘치료하는 장미’라는 뜻으로 무궁화가 몸에도 좋은 식물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무궁화의 약성은 순하고 독이 없으며 장풍(일종의 치질)을 멎게 하고, 설사한 후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는데 졸음이 온다"고 약학적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도움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박형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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