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조림을 즐겨먹는 사람 중에는 무 만 골라먹는 사람이 있는데, 무를 갈아서 넣으면 좀…. 아무도 여기에 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아요." "맛이 좀 짜고 자극적이네요. 아무리 반찬이라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은 아이들에게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주부 경력 3년 이상의 베테랑 주부들이 서울 충무로에 있는 샘표 본사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이 이날 맛을 모니터링한 제품은 샘표가 지난해 출시한 ‘바로 먹는 양념 고등어.’ 젓가락을 들어 몇차례 맛을 보기가 무섭게 신랄하고 정교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하나하나 이들의 지적을 받아 적는 샘표 직원의 이마에는 어느새 진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가 정리한 자료는 곧바로 제품개발팀에 전해져 제품 업그레이드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 주부들은 샘표가 지난달 초 인터넷 공모를 통해 모집한 ‘주부패널’이다. 주부 모니터 요원들이 한 달에 1~2회씩 고정적으로 모이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신제품 출시, 디자인 개발, 광고 모니터링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테스트에 참여한다.
하지만 주부패널이 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서류전형과 8가지 맛을 정확히 구분해 내는 ‘미맹(味盲) 테스트’ 등을 거쳐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백화점, 홈쇼핑 등 인기 업체의 모니터요원이나 패널이 되기 위해서는 간단한 시험을 치르거나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까다로운 전형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날 모인 주부패널 가운데 50% 이상은 이미 백화점 제과업체 등 다른 업종의 모니터 요원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데다, 업체에서도 경력있는 주부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문 주부 모니터 요원’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룰’이 있다. 절대 같은 업종에서 하나 이상의 업체를 맡지 않는 다는 것. 주부 박모(43)씨는 "한 업종에서 2개 이상의 업체를 동시에 모니터링 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된 제품이 출시되거나, 제품이 개선되는 것을 볼 때다. 주부패널 구모(37)씨는 "모 제과회사의 씨리얼 과자 중에서 멜론 맛이 탄생하게 된 것은 모두 내 공이었다"면서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을 보다 맛있고, 건강하게 만드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3년째 백화점 등에서 모니터 요원으로 일해왔다는 이모(44)씨는 "주부들 만큼 식품과 쇼핑, 생활용품 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면서 "주부도 일종의 전문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보통 모니터링에 참여할 때마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25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음식 한번 맛보고, 백화점 한번 돌아보는 수고에 대한 답례로 받는 것치고는 꽤 많은 돈을 받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업체마다 모니터링 후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거나, 직원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시키는 등 숙제가 많다. 이씨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회사든 돈을 준 만큼 일을 시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됐다"며 "직장생활 하면서 힘들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이들의 손에는 각종 샘표 제품들이 담긴 조그만 쇼핑백이 하나씩 들려졌다. 수당 외에 각종 생필품을 선물로 받는 것도 이들에겐 쏠쏠한 재미거리다. 샘표 관계자는 "주부패널들은 소비자 홍보의 허브로, 주부 사회에 우리 제품에 대한 좋은 입소문을 내는데 효과적"이라며 "그들에게 우리의 제품을 나눠주는 것은 일에 대한 보상도 보상이지만 홍보 전략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샘표 주부패널은 2000년 98명이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4기가 활동 중이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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