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당을 분리, 운용하는 당정분리 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소신으로 정한 원칙이자 제도이다. 당선자 시절부터 천명한 이 원칙은 열린우리당 당헌당규에 명문화돼 있고, 노 대통령은 예전 정권과 달리 당을 대표하지 않는 평당원의 신분이다. 대통령이 돈과 공천권으로 당을 장악해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틀어쥐고 일사불란하게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구습을 버리겠다는 것이 당정분리의 뜻이다.
■대통령은 당에 대해 특별한 권한을 요구하지 않으며 정치에도 가급적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4ㆍ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당정분리 폐기 요구가 드세졌을 때도 노 대통령은 기고문을 통해 “당에 대한 대통령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는 국회의원 어느 분도 옛날처럼 대통령의 지시 통제를 받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원칙고수를 분명히 했다. 당정분리 폐기 주장은 선거패배의 충격으로 당의 국정 및 정국 주도력에 대해 일어난 심각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지지율 하락과 당 내분 등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이었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럼 당정분리가 집권책임의 생산과 효과를 낳는 방식으로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가. 비근한 예 몇 가지를 보면 그 개념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논란거리만을 확대하고 있다.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 전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파동,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 파문 등은 대통령의 단 한마디로 당의 입장이 뒤집어 지면서 혼란을 가중한 사례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이 여당에 대해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지렛대도 없으니 어느 나라보다 힘 없는 정부 수반”이라고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는 한편 당정분리 원칙을 가장 극적으로 깬 사람은 또 노 대통령 자신이다.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연정제의가 그것이다. “권력을 열린우리당에게 이양하고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한다”는 연정의 논리는 당을 일거에 제치고 노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선언이자 행동이다. 한 여당 의원은 “과거 제왕적 총재 이상의 칙령”이라고 비판했지만 당 지도부는 그래도 대통령의 말에 뒷북치고 박자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정작 노 대통령은 휴가에 들어가 있고, 한나라당은 이를 공식 거부했다. ‘혼선과 태만과 무능’이라는 내부의 자책, 갈수록 맞는 말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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