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 역시 연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지만,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출범 이래 독일 정치는 사실상 연정(聯政)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기 4년의 의원(연방하원)을 뽑는 총선은 지금까지 16차례 실시됐지만, 어느 한 당이 과반수를 획득해 단독으로 집권한 예는 없다. 처음부터 다당제와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어느 한 당이 다수를 점하지 못하도록 한 법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정체’(Grid lock)로 불리는 이런 현상은 미국 상원도 마찬가지다.
46년간의 연정은 크게 좌파와 우파를 중심으로 2개 또는 4개 정당들로 구성됐다. 총리도 선거보다는 연정의 성립과 해체에 따라 결정됐다. 선거로 총리가 바뀐 예는 1998년 한 차례에 그친다.
49년 8월 치러진 첫 총선에서 성립된 연정은 보수색채를 지닌 정당들로 구성됐다. 기민-기사연합을 중심으로 한 보수연정은 이후 4차례 총선에서 승리하며 66년까지 집권한다.
당시 초대 총리에 오른 기민당 출신 콘라드 아데나워는 63년 자민당의 연정 탈퇴로 기독연합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로 교체된다. 보수연정은 비록 65년 5대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연정을 구성한 자민당이 다시 탈퇴하면서 권력을 놓는다.
이후 정권은 우파 기독연합과 좌파 사민당으로 넘겨갔다. 이른바 대연정으로 불리는 좌우파 연정이 집권한 66~69년은 경제회복을 일궈낸 기간으로 평가된다.
69년 6대 총선에서 사민당은 기민-기사연합에 뒤진 2위였지만, 3위인 자민당과 손을 잡고 집권에 성공한다. 사민-자민 연정은 이후 3차례 총선에서 승리하며, 82년 자민당이 탈퇴할 때까지 14년이나 지속된다. 사민-자민 연정 기간 총리에 오른 빌리 브란트는 74년 보좌관의 동독 정보기관 간첩활동 문제로 사임했으며, 헬무트 슈미트가 자리를 승계했다.
사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한 자민당이 82년 기민-기사연합과 연정을 꾸리면서 정권은 다시 보수연정으로 넘어갔다. 98년까지 17년간 계속된 보수연정의 총리는 기민-기사연합의 바이에른주 자매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의 당수인 헬무트 콜이 맡았다.
98년 총선에서 탄생한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 연정은 2002년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현재에 이른다. 당시 연임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실각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캐스팅보트 쥔 자민당 제4당 추락 녹색당
완전한 승자 없는 이번 독일 총선은 7년 만에 녹색당과 자민당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1998년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로 ‘적-녹 연정’을 구성, 환경정당으로는 세계 처음으로 정권에 참여했던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추락했다. 녹색당은 득표율 8.1%, 51석 확보에 그치면서 자민당(9.8%)은 물론 좌파연합(8.7%)에도 밀렸다.
연정 협상에서 정권에 참여하더라도 제3당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전 만한 발언권을 기대하기 어렵다.
녹색당은 시민운동단체를 모태로 70년 결성된 이후 후퇴를 모르는 약진만 거듭해왔다. 78년 니더작센주 선거에 첫 참여한 이래 79년 브레멘에서 주의원 4명을 당선 시킨 뒤 전국 정당으로 쇄신했고, 83년 총선에선 의회 진출 하한선(5%)를 넘는 5.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7석을 확보해 연방의회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녹색당의 현재는 초라하다. 9개 주에서 사민당과 적-녹 연정을 구성한 적도 있으나,지금은 모두 보수정당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반면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인 자민당은 제3당으로 올라서며 재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연정의 캐스팅보트까지 쥐었다. 좌우파 모두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한 상황에서 기민-기사련과 사민당 모두와 연정 구성의 경험이 있는 자민당은 연정 협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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