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물가 우려 발언을 계기로 ‘인플레이션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유럽뿐 아니라 그 동안 물가 하락의 부작용에 시달려왔던 일본까지 물가 상승 우려를 제기하면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행진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1970년대로의 회귀? 인플레이션 유령이 되돌아온 까닭은’이란 기사에서 “초조해진 시장의 한복판에 선 정책 결정자들은 세계화라는 변수 탓에 제대로 된 물가 전망을 못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증시를 고꾸라뜨린 버냉키 의장의 5일 연설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의 한 축에 불과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연합(서유럽 12개국 기준) 물가가 4월과 5월 각각 전년대비 2.4%, 2.5%씩 오름에 따라 6월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이 같은 물가 상승폭은 ECB가 ‘안정적 물가’의 기준으로 정해둔 ‘연간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아울러 총 통화량(4월 기준)이 지난해보다 8.8%나 늘어났고 국제통화기금(IMF)까지 “유럽 물가 상승률은 2008년까지 2% 아래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등 인플레이션 조짐이 심상치 않다.
디플레이션으로 고전한 일본까지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눈길을 돌리며 ‘0% 금리’ 탈출 시기를 노리는 것도 변화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는 최근 전년 대비 0.5% 상승하며 기나긴 침체기를 벗어나는 조짐이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성 장관은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물가하락 위험이 남아있어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리를 조정할 일본은행(BOJ)의 입장은 다르다. 자산 거품 붕괴 직전인 1980년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기준 1%도 돼지 않았던 ‘교훈’을 상기한다면 지금의 움직임을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변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초조함이 물가 상승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FT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세, 에너지 가격 상승, 값싼 중국 노동력 및 소비재의 가격 상승 조짐, 개인 부채 증가로 인한 통화량 급증 등이 물가를 밀어올릴 전망”이라며 “그러나 FRB, ECB 및 BOJ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적용했던 인플레이션 모델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버냉키와 주가>버냉키와>
1. 4월 27일
"경기전망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 미래의 특정 시점에 한두 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미 의회 증언)
→발언 직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0.25%), 나스닥 종합지수(0.49%), S&P500지수(0.33%) 일제히 급상승
2. 5월 1일
"시장이 나의 말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CNBC와의 인터뷰)
→오르던 증시 마감 직전 보도로 다우 지수 0.21% 하락
3. 6월 5일
"최근의 소비자물가 급등 바람직하지 않다."(국제금융회의 연설)
→ 이틀 사이 다우 지수 2% 이상 급락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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