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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마르셀라 아이쿱 소설 '사랑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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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마르셀라 아이쿱 소설 '사랑하면 죽는다'

입력
2006.08.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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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랑이란 상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했다.…은밀한 공상 속에서 사랑은 결국 대결이라고 믿었다.”-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마르셀라 이아쿱이라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 겸 법률학자의 소설 ‘사랑하면 죽는다’(홍은주 옮김, 세계사 발행ㆍ9,500원)는, 그 지하 생활자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간파한 선지자였음을 논증하는 한 정신의학자의 수기 같다.

‘장 뤽 자메’라는 이 의사는, 사랑의 본질은 ‘억압’이며, 따라서 유사 이래 여러 예술과 종교, 철학이 주입해 온 사랑의 신화는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억압적 사랑이 남기는 정신적 외상은 신체적 상처보다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이 음험한 범죄행위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위정자들이 그의 신민들을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 가둬두기 위해서다. 사랑은 정신적 재난일 뿐이다.

‘자메’는 자신이 경험한 8건의 임상 사례를 소개한다.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다 실연해 자살을 감행하는 청년, 뜨내기 외판원의 매력에 끌려 가정과 직장마저 내팽개치고 매춘까지 하게 되는 여자, 연애에 늘 실패하다가 가까스로 멋진 여자를 만나지만 결국 버림받고 재기 불능의 지경에 빠지는 여자 등등. ‘자메’는 이 사례들을 통해 사랑의 추악한 본질을 까발린다. 병리적 사례와 심층적 진실, 사회적 의미 등을 차례로 설명하고 자신의 분석과 결론을 논증한다.

사랑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권력 게임이라면, 사랑은 권력의 작동기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상대방의 허약한 감정, 콤플렉스, 자신에 대한 열정 등을 이용해 상대를 고립시키고, 억압하고 궁극적으로 파괴한다. 어떤 악의적인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운동 논리에 의해서. 그 행위를 막기 위한 어떤 화해나 타협도 불가능하다. “마음속에서 이별을 감행할 수 있는 쪽이 지배자가 되고 다른 쪽은 노예가 된다.…몽테스키외의 말처럼 지배자는 스스로 권력을 제한할 줄 모르는 법이다.…이상성욕은 사랑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사랑의 필연적 결과를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46~47쪽)

마지막 임상 사례는 ‘자메’ 자신의 이야기다. 그 역시 이 억압적 사랑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 수기는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메’가 인류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기소하고, 사형(최소한 ‘보호관찰’)을 구형하는 논고다.

작가는 이 전복적인 이야기를 지적인 논픽션의 문체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전개한다. 소설에는 ‘자메’의 유고로 만든 책의 1ㆍ2판 서문과 독자의 추천사, 그 책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의 항변도 실려있다. 당연히 모두 허구다. 보르헤스가 즐겨 썼듯, 그럴싸한 가상의 문헌을 실제 문헌의 각주 속에 교묘히 섞어 넣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근엄한 표정 뒤에 장난기를 감춘 듯한 이 형식이 책의 내용과 교감하면서, 이 시대의 병든 사랑을 근사하게 풍자한다. 그런데, 과연, 풍자일까?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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