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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春문예 당선자는 '辛春고아'/ 年수입, 소설가 100만원線…시인 30만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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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春문예 당선자는 '辛春고아'/ 年수입, 소설가 100만원線…시인 30만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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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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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른 중반에 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B씨.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쓸 요량으로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6개월을 세차장에서 일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재취업센터에서 그래픽 기술도 배웠지만 취업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선 직후 반짝 들어온 원고청탁은 3곳이 전부였고, 원고료는 다해 봐야 10만원 남짓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시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묻더니 "차라리 라디오에 경품이나 신청하라"고 했다. B씨는 현재 문학과 관련이 없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2. 지난해 문예지 비평 부문에 등단한 김모씨는 2003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다. 그는 작가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재등단'이라는 험로를 택했다. 문학계의 관심은 등단 이후 잠시 뿐이었고, 작품을 소개 할 지면을 얻는 것도 문예지 출신보다 힘겨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다. 김씨는 "신춘문예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데다 문학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문학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재등단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이 시대 '문청'들이 겨우내 건져올린 삶의 편린들이 빛을 발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당선의 영광도 잠시 뿐.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신춘(新春)이 아닌 신춘(申春)이다.

이들은 당선 이후 자신들의 처지를 '신춘고아'로 표현하며 탄식한다. 가난은 천형처럼 거치적대고, 길잡이가 돼 줄 선배들은 찾을 길이 없다. 해서 어떤 이는 등단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펜을 꺾기도 한다.

소설가 백가흠씨는 현대문학 2006년 12월호에 실린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 그루> 라는 글에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 꿈이 연봉 600만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소설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신춘문예 등단작가 100명을 조사한 결과, 소설가는 연평균 수입이 100만원 가량이지만 시인은 30만원을 넘지 못했다. 문예지가 시 한편에 주는 원고료는 4만~10만원선. 하지만 현대문학 문학동네 등 5대 문예지를 제외하곤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으로 대체하기 일쑤다.

이렇다 보니 등단 작가들은 집필활동을 위해 논술과외 학원강사 대필 등 부업을 뛸 수 밖에 없다. 가정주부와 학생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집필에만 전념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소설가 정모씨는 "출판물 교열로 버는 돈이 월 100만원도 안돼 가계 생활비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작가들의 숨통을 터주는 게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이다. 이 위원회는 매분기 문예지 발표작품 중 우수작(4만~100만원)을 뽑는 한편, 매년 100여명의 작가(1인당 1,200만원)를 선정해 창작기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본보가 조사한 100명의 작가 중 한번이라도 창작기금을 받은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신춘문예 작가들이 '신춘고아'라고 자조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문예지 등단 작가와는 달리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문예지의 경우 등단 작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주지만, 신춘 작가들은 당선 이후 한두 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은 중앙일간지 재등단이 작가로 살아 남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지방지와 중앙지 신춘문예에 연달아 당선된 한 작가는 "신춘 작가들은 매니저 없이 혼자 뛰는 연예인, 문예지 등단 작가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으로 보면 된다"며 "지방지 출신들은 중앙지로 재등단 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문학계 풍토"라고 지적했다.

2002년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한 작가는 "한해에 배출되는 신춘문예 당선자 10여명 중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1명 정도"라며 "8~9명은 근근히 작가생명만 이어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유병률·안형영 기자, 사진부 = 최흥수·배우한 기자 news@hk.co.kr

■ 독서 취향이 변했다

순수문학의 위기와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궁박한 삶은 독자들의 독서취향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본보 취재팀이 교보문고가 1981~2006년 집계한 베스트셀러 20위권 목록을 분석한 결과, 과거 국내 작가들의 문학작품이 휩쓸던 상위권을 외국 작가들의 실용서가 대신하고 있었다.

81년의 경우 <어둠의 자식들> (황석영),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청준) 등 국내 작가의 문학작품이 7편에 달했지만, 2006년엔 공지영의 소설 2개만 이름을 올렸다. 국내 작가들의 공백은 파울로 코엘류, 댄 브라운 등 외국의 유명작가들이 대신했다.

시의 몰락은 극적이다 못해 비참하다. 87년의 경우 <홀로서기> (서정윤), <접시꽃 당신> (도종환)이 1, 2위에 올랐다. 88년에도 시집이 1~3위를 석권했고, 무려 7권의 시집이 20위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작년엔 단 한 권의 시집도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반면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는 강세다. 2000년 들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3위),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 (7위)가 상위권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부자들> (20003년 6위), <설득의 심리학> (2004년 4위), <블루오션 전략> (2005년 5위), <마시멜로 이야기> (2006년 1위) 등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청년 실업난이 가중된 2001년부터는 <해커스 토익> , <토마토 토익> 등 어학서적도 상위권에 진입했다. 교보문고 남성호 홍보팀장은 "독자들의 개인화와 소비지향적 취향이 인터넷 등의 새로운 매체 출현과 결합되면서 문학이 외면당하고 있다"며 "출판계가 마케팅이 쉽고 수익이 보장되는 번역물이나 실용서에 치중하는 경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유병률·안형영 기자, 사진부 = 최흥수·배우한 기자 news@hk.co.kr

■ 신춘문예 등단 시인의 고백/ "허기진 배 채우려 야설쓰고 대필도"

2001년 1월. 생의 축복이 봄 햇살처럼 내리쬐었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밤새 뱉어낸 자식 같은 파지(破紙)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했다. 그런데 그 많던 문인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떻게 '글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다. 글 청탁은 금새 끊겼다. 눈 앞엔 '문학'이 아니라 '생존'만 덩그러니 남았다.

밥 벌이에 나섰다. 경기 화성의 참기름 공장에서 제품을 포장하는 게 등단 이후 첫 직업이었다. 한달 여를 일하다 울컥 분이 치밀었다. '이러자고 문학을 선택했나.' 참기름 통을 내던지고 뛰쳐나왔다. '아무리 개 같은 짓이라도 문학으로 먹고 살자'고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야설작가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에로영화 제작사로 유명한 서울 명동의 Y프로덕션이었다. 에로배우 겸 사무원인 여직원이 면접을 보고 나서 주문한 사항은 단 하나. "당신이 신춘문예 당선자든 뭐든 상관없다.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게만 써라." 일주일 간격으로 300매 이상의 원고를 꾸준히 썼지만, "이래 가지고 꼴리겠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수십 편의 야설(야한 소설)을 썼지만, 원고료는 한푼도 나오지 않았다. 밀린 원고료 8개월 치를 받기 위해 Y프로덕션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건 텅 빈 사무실. Y프로덕션을 사칭한 '유령회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수소문 끝에 회사 관계자를 만났지만, "돈을 포기할 테니 내 글만 유포시키지 말아달라"고 애원한 뒤 발길을 돌려야 했다.

보금자리인 1평 남짓의 교회 기도실로 돌아와 비쩍 마른 영혼을 부여잡고 눈물을 삼켰다. 백지에 쓰여지는 글들은 내 영혼을 좀먹는 벌레들이었다. 남산에 올랐다. 절필을 위한 마지막 제의(祭儀)였다.

다시 한번 맘을 다잡고 전단지와 신문배달, 논술과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대필 또한 생존을 위한 볼모였다. 2년 동안 11명의 자서전을 썼다. 그들이 내뱉은 말에 포함되지 않은 삶의 공백들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설을 써댔던가. 그래도 어쩌랴, 허기진 창자에 김 모락모락 나는 밥 한 숟가락 얹으려면.

내 글을 내 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기형의 기억들. 영혼의 허기짐은 삶의 궁핍을 능가했다. 더 이상 '내 글이 아닌 내 글'을 쓸 수 없었다. 가난을 짐짝처럼 업고 살아야 한다면 진정한 내 글을 쓰자. 신춘문예 당선 3년이 흘러서야 문학으로 가는 길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고통 속에서 체득한 삶의 조각들은 내 문학의 거름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유병률·안형영 기자, 사진부 = 최흥수·배우한 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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