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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1> 김용준 ‘조선미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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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1> 김용준 ‘조선미술대요’

입력
2007.03.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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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미술은 석기시대부터” 일제가 덧칠한 왜곡 걷어내

*석기시대~당대까지 시대별 체계적 정리빼어난 문장력, 수필체 서술 원형을 제시

*“우리 미술사 대중화 새 기틀 마련” 평가

요즘은 미술사 책이 참 많다. 우리 미술의 역사나 가치를 알기 쉽게 소개해 교양서로 잘 팔리는 책도 여럿 된다.

하지만 반 세기 전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쓴 우리 미술사 책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 미술사는 일본인들이 조사ㆍ연구ㆍ정리해서 체계를 세우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왜곡과 폄하가 따랐다. 일제 어용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조선미술사> 가 대표적이다. 김용준은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조선미술대요> 는 1949년 처음 나왔다. 새 나라의 기틀조차 제대로 잡히기 전, 모든 것이 열악하던 그 시절, 이 책이 나옴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손으로 써서 대중이 널리 읽는 우리 미술사 책을 갖게 되었다.

이에 앞서 해방 직후인 1946년 윤희순의 <조선미술사연구> 가 나왔지만, 대중이 읽기엔 딱딱한 책이었다. 김용준과 동년배로 미술사를 전공한 고유섭은 일제시대에 많은 논문을 써서 한국미술사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한국 미술사의 서화를 총정리한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1928)도 일제시대에 나온 역저다.

<조선미술대요> 를 쓸 때만 해도 김용준은 그림 그리고 골동 취미를 즐기고 평론을 쓰는 사람이지, 전문적인 미술사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서게 된 이유는 두 가지, 미술 방면 책이 너무 없으니 문외한이나 중학교 상급생이 읽을 만한 계몽 정도의 조선미술사를 써보라는 출판사의 권유를 받았고, 남의 나라 미술을 배워온 사람으로서 내 나라 미술 공부 좀 해보자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스스로 서문에 밝히기를 ‘자신의 무지를 폭로할 각오로 보고 느낀 대로 이야기하듯 썼다’며, ‘후학이 격분해서 더 좋은 책을 내놓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책은 멀리 석기시대부터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우리나라 미술의 성격과 특징을 건축ㆍ조각ㆍ서화ㆍ공예의 순서로 짚고 있다. 김용준 당대인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의 미술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

반 세기 전에 나온 이 책을 읽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지은이의 글 솜씨와 안목일 것이다. 단순히 지식으로서 미술사를 전하는 건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미술품이 왜 아름다우며 어떠한 환경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을 밝히려고’ 애썼다. 잘 알려진 수필집 <근원수필> 에서 보듯 그의 문장력은 매우 탁월해서 그러한 의도를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석굴암 본존불을 다룬 대목을 잠시 읽어보자.

‘그야말로 그린 듯한 눈썹과 고요하게 내려 뜬 봉안(鳳顔)과, 알맞은 코와 끝없이 예쁜 입술과, 볼록한 두 턱과 연잎 같은 길다란 귀와, 풍만한 두 볼과 탄력성 있는 어깨와 가슴과 좌우 팔이며, 손끝 발끝까지 어느 한 부분 혈관이 아니 통한 곳이 없으며, 따뜻한 피가 돌고 있는 파동을 느끼지 않는 곳이 없다.

부드러운 살결이, 만지면 따뜻한 것 같고 혈관이 뛰는 것 같고 그 속에 장대한 근골(筋骨)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이 석불은 조각이란 이름을 붙였으되 완전한 한 인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것 같다.’

맛깔스럽고 품위있는 문장과 더불어 명쾌한 표현도 읽는 맛을 더 한다. ‘패기로 일관된 고구려 미술, 웅혼하고 비약적인 신라의 미술, 화려하고 명랑한 백제의 미술, 그 모든 요소를 종합한 황금시대 통일신라의 미술, 섬약하나마 우미하고 애련하나마 미의 전당에서 떠날 날이 없었던 고려의 미술,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며 소박하고도 묵중하며 평민적인 조선의 유교미술’이라는 서술은 우리 미술의 시대별 특징을 제대로 추려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학문적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는 2004년 인물미술사학회(회장 윤범모)가 연 근원 김용준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가 발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조선미술대요> 가 우리나라 미술을 보는 기준과 한국미의 성격, 미술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해석력, 뛰어난 논객다운 설득력 있는 서술로 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했다. 그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석기시대로 올려놓은 점을 꼽았다.

일제 어용학자들이 조선미술사의 시작을 낙랑시대로 잡아 식민사관을 반영했던 것과 달리 당시로선 고고학의 영역이라 치부되던 석기시대를 제시함으로써 민족의 기원과 문화의 계통을 새롭게 보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한국미술의 성격과 특징을 긍정적ㆍ적극적으로 해석한 점, 우리 문화와 미술의 형성 과정에 외국과의 교류를 인정하고 그 양상을 비교하는 비교미술사학적 방법을 택한 것, 구수하면서도 느긋하고 정감어린 문체로 이후 이동주 최순우 유홍준 등으로 이어지는 수殼?미술사 서술 방식의 원형을 제시한 점도 성과라고 평가했다.

반면 기후나 지리, 풍토를 미술의 특징과 결부하는 전형성, 일제 관학이 펴낸 자료 <고적도보> 를 1차 자료로 쓴 점, 조선시대 미술을 소홀히 다룬 점 등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선미술대요> 는 2001년 출판사 열화당이 김용준 전집(총 5권)의 제 2권으로 다시 펴냈다. 당시 전집을 기획한 미술평론가 최열은 <조선미술대요> 의 가치를 이렇게 요약한다. ‘일제시대부터 이뤄진 한국미술사 연구 성과의 총화, 우리 미술사의 관점을 새롭게 한 기점, 그리고 미술사 대중화의 출발점’ 이라고. 그는 무엇보다 “근원 자신의 통찰력과 안목, 감각에 빼어난 문장력까지 갖춰 쓴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 연보

1904년 경북 선산 출생. 동양화가 겸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 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 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 1925년 경성중앙고보, 1931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졸. 1946년 서울대 동양화가 교수, 1948년 동국대 교수로 있다가 1950년 9월 월북. 북한에서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1967년 사망. 저서는 <근원수필> (1948) <조선미술대요> (1949) <고구려 고분벽화연구> (1958) 등. 회화 작품으로 수묵채색화 <춤> (1957) 등 다수.

■그림·저서초판본·사진자료 등 타계 40주기 맞아 전시회도

김용준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2001년 다섯 권의 김용준 전집을 펴냈던 출판사 열화당은 김용준 타계 40주기를 맞아 김용준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5월 파주출판단지의 열화당 사옥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김용준이 그린 그림과 그가 장정한 일제시대 책들, 그가 쓴 책들의 초판, 사진 자료 등을 내보일 예정이다.

김용준은 <조선미술대요> 의 서문에서 밝혔듯 본래 미술 작가를 꿈꿨다. 유화로 출발해서 일본 유학시절 동양화로 돌아간 그는 문인화 전통을 사랑했고 직접 그림을 그렸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으로 가서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그림도 계속 그려서 1958년 '공화국 창건 10주년 경축 국가 미술 전람회'에 <강냉이> 를 출품해 2등을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올 김용준의 그림은 약 10점. 그의 그림은 그와 절친했던 화가 수화 김환기의 작품과 함께 1996년 환기미술관의 <근원과 수화> 전에서 한 번 선보인 적이 있다.

일제시대 화단의 최고 논객으로서 맹활약했던 그는 직접 장정가로도 유명했다.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청록파 시집 <청록집> ,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 , 정지용의 시집 <지용시선> 등 일제시대에 나온 당대 최고 시인과 소설가의 책을 그가 장정했다. 절친한 친구였던 이태준의 소설집 <달밤> ,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 박두진의 시집 <해> , 염상섭의 소설 <이심> , 프롤레타리아 문학 이론가로 이름 높은 임화의 <문학의 논리> 등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근원수필> <조선미술대요> 등 김용준 저작의 초판본도 이 전시에 나온다. 북한에서 쓴 노작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는 초판 원본을 구하지 못해 복제본을 선보일 계획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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