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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3>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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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저 50] <13>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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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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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과 12월 대선, 89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90년 독일 통일, 91년 소련 붕괴, 급작스러운 90년 3당 합당에 이은 92년 대선…. 한국 민주주의는 그 지난한 탄생만큼 성장통도 심하게 앓았다.

진보 진영, 특히 마르크시즘을 추종했던 지식인들의 명운은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했다. 6월 항쟁을 통해 국민적 가치인 양 대중 속을 파고 들던 이들의 변혁 이론은 불과 2, 3년 후 70년에 걸친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기 무섭게 존재 의미를 잃어갔다.

마르크시즘과 함께 지리멸렬하던 진보 이론의 구원자로 나선 것은 소위 ‘모래시계 세대’ 지식인들이었다. 8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이 젊은 연구자들은 네오마르크시즘을 비롯한 비판이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사회운동 참여와 기획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시카고대학에서 노동정치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귀국한 40대 늦깎이 박사 최장집은 해박한 지식과 열정적 학문 활동으로 단박에 ‘진보 뉴웨이브’의 대부로 부상했다.

박사 논문 출간을 빼면 첫 단독 저작인 <한국 현대정치의 구조와 변화> (1989)에서 최장집은 네오마르크시스트인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진보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의 ‘코포라티즘’ 이론을 국내에 소개하며 진보적 소장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불어 특유의 정치한 문장에 담아낸 한국 현대 정치사 분석은 “탁월한 문제 의식을 갖춘, 브루스 커밍스와 쌍벽을 이룰 만한 연구”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이 책은 권력층이 6·29 선언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대신 중산층을 개혁적 민중과 분리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지적한다. 또 87년 대선에 정치적으로 동원된 지역 감정은 민주화 세력의 분열을 일으킨 것은 물론, 실질적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 예견한다.

최장집을 논할 때 흔히 거론되는 사상가는 그람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이 번번히 실패로 귀결되는 원인 규명에 천착한 그는 국가의 폭력적 권위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주류 언술로 유포되는 헤게모니에 주목한다. 권력층은 헤게모니를 조작, 유포, 공고화 함으로써 대중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비판이론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시즘의 이분법적 토대-상부 구조를 벗어나 시민사회를 언급한 까닭에 그람시 이론은 80년대 후반 시민운동의 발흥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하지만 최장집은 “나는 늘 네오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적 비판이론 간 균형을 중시했다”며 자신을 ‘그람시안’으로 규정하는 논의를 경계한다.

93년에 내놓은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은 외형적 자유화가 아닌 실질적 민주화를 중시하는 최장집의 문제 의식이 더욱 날카롭게 벼려진 기념비적 저작이다.

89년부터 92년 대선 직후까지의 논문을 모은 이 책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가 아직 틀을 잡지 않은 이행기적 상황에서 학자이자 운동가로서의 관심사와 희망을 투영했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87년 항쟁 이후의 한국 정치체제를 ‘제한적 민주주의’로 명명한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 정치ㆍ사회ㆍ경제적으로 소외된 민중이 민주화의 실질 주체가 돼야 한다는 ‘민중민주주의’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그 실천에선 변화가 감지된다. “기존 헤게모니 구조에서 민중 운동은 곧바로 정당 조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던 전작과 달리 “민주주의는 민중들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정치권력을 행사할 여지를 제공한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한 변혁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최장집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마르크시즘, 그람시, 토크빌 등의 사회구조 이론을 창조적으로 융합하면서 국가-시민사회의 중간 층위에 ‘정치사회’를 위치시킨다.

노동 계급을 비롯한 시민사회 속 민중은 정치사회에 참여해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정당을 통해 조직함으로써 국가를 민주화시키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치사회 및 정당의 역할을 중시하는 그의 지론이 이 책에서 원형을 갖춘 셈이다. 아울러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합리적 사회 건설을 위한 사상체계로서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고 진단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은 출간과 함께 학계에 뜨거운 논쟁 거리를 제공했다. 정통 마르크시즘 입장에 선 김세균은 최장집의 이론이 사실상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상진은 중산층의 개혁 성향을 긍정하는 ‘중민(中民)론’을 내세우고 하버마스를 국내에 소개하는 등 온건 시민사회론으로 최장집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외부적 논쟁이 아니더라도 신간을 뺨?최장집의 속은 편치 않았다. 92년 대선에서 다시금 수평적 정권교체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한국의 시민사회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되긴커녕 지역주의 이데올로기에 힘없이 휘둘리는 걸 보며 실망을 많이 했다”고 그는 토로한다.

대선 결과를 보고 쓴 책의 마지막 장과 결문에서도 민주화운동세력이 주도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에 대한 짙은 회의감이 묻어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견결한 진보학자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이행 과정은 이후로도 기대를 실망으로 환치시키는 쓰린 경험이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질적 후퇴” 진보논쟁 단초

96년<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이후 최장집의 저작은 세기를 넘기고도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그는‘시민사회’와‘정치사회’를 넘어‘국가’에 진출하기도 했다.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은것. 하지만 그가 주창한‘민주적 시장경제론’은좌우 진영에서 동시에 비판받았고, 그해 10월엔 <월간조선> 의‘사상 검증’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다 1년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최장집의 학자적 양심을 믿었던 이들은 IMF 관리 체제라는 위기 상황에서 그가 소신껏 일하기 어려웠으리라 예상하곤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워낙 강한 헤게모니를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외환위기로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그 시기야말로 민주 정부가 재벌 개혁에 착수할수 있었던 호기였다. 하지만 DJ 정부는 빨리 위기를 극복하려 손쉬운 단기 처방에만

의존했다.”

오랜 공백을 깨고 그가 2002년 11월에 내놓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는“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첫 문장 만큼이나 강렬한 화젯거리가 됐다. 현정부도 자신의 진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을 담은 최근의 저작과 강연은 대통령까지 가담한‘진보 논쟁’의 단초가 됐다. 정작 그는 자신이‘좌파의좌장’으로 자리매김한 현실을 매우 불편해하지만 말이다.

그는 요즘 정당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있다. 보수당 외에도 노동자등시민사회속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정당이 출현해야 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그런 점에서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널찍한 정당 체제가 곧 형성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그가 보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어느덧 이행기를 거쳐 공고화 단계, 그것도‘나쁜 방향’으로 굳어가는 과정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협애한 정치 체제, 역량이 부족한 시민사회….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정치적 다원주의는 어떤 활로를 요구하는가. 혹시 정치적 엘리티시즘?“ 글쎄, 좋은 정치의 중심, 리더십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이익을 대표할 것 인가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아이디어, 프로그램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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