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에 주름진 얼굴, 허름한 옷차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하지만 언제나 옆구리엔 직접 작성한 온갖 야구기록들이 빼곡히 들어찬 가방이 있다.
제3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개막한 3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도 어김없이 최기주(65)씨는 눈에 띄었다. 야구와 관련해 아무런 직함을 가져본 적이 없는 순수한 팬이지만 반세기 이상 줄기차게 고교야구경기 스탠드를 지켜온 그를 모르는 야구 관계자는 없다.
더구나 이날은 평생의 추억이 쌓인 동대문구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고교야구 대회 첫날이다. 지난달 29일 끝난 화랑기대회 관전을 위해 부산으로 '출장'을 다녀와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일찌감치 나와 매점과 특석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다. "내 직장인데 내 손으로 청소하는 게 당연하지."
그리운 고교야구 열광의 추억
운동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그에게 예전 온 나라를 들끓게 한 고교야구 열기는 꿈처럼 아련하다. 그 때는 동문이 아니더라도 전국민이 저마다 응원하는 고교팀을 갖고 있었고, 어린 선수들의 이름과 기록을 줄줄 외웠다. 지금의 프로야구 분위기와도 비교할 게 아니었다. "1960, 7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암표상이 극성을 부렸으니까."
특히 71년 탄생한 봉황대기 고교야구는 다른 어떤 대회보다도 신나는 대회였다. 지방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전국의 모든 고교 야구팀을 동대문야구장에 앉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 "봉황대기가 좋은 이유는 또 있어. 방학 때 열리니까 피서를 겸할 수 있다는 거지. 한 여름 열기 속에서 시원한 경기를 보는, 그게 봉황대기의 제 맛이야."
50년간 1만 야구경기 기록
최씨는 서울 흥인초등학교 때 친구들에 이끌려 야구장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야구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난수표 같은 야구기록지 작성은 중독과도 같은 즐거움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본격적으로 동대문구장을 '직장' 삼았다.
1년 평균 250경기를 현장에서 보고, 직접 기록해왔으니 지금까지 어림잡아 1만 경기가 넘는다. 58년부터 그가 꼼꼼히 정리한 야구기록은 동대문야구장 창고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평생을 야구장에서 살아왔지만 프로야구는 보지 않는다. '기록을 남기는 일은 역사를 쓰는 건데 '장사냄새' 나는 프로야구는 아니지." 이날도 그의 손에는 노트와 볼펜이 들렸다.
65세 '노총각'인 그는 지금껏 연탄배달, 막노동, 청소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야구를 보기 위한 것. "야구는 내 인생과도 같아. 밥은 못 먹어도 야구는 봐야지. 그게 사는 의미인데…."
동대문구장은 직장이자 문화재
그런 최씨에게 이제 곧 사라질 동대문야구장에 대한 소회가 각별하지 않을 리 없다. "여기서 열린 야구경기가 얼마며, 또 내가 여기를 출입한 세월이 얼마야. 동대문구장이 없어진다는 것은 내 직장과 대한민국의 문화재가 없어지는 거지. 왜 안 서운하겠어?."
그는 동대문야구장 시대를 영원히 마감하는 이번 봉황대기 대회에서만큼은 단 한번 만이라도 왕년의 열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 "동문들이든, 예전 팬들이든 다 함께 모여서 그 옛날 그토록 열광했던 고교야구의 분위기를 추억했으면 좋겠어."
글=최경호기자 squeeze@hk.co.kr사진=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