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7일 여중생 A양은 성폭행을 당한 직후 울산 남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보지 못하는 범인 식별실이 있는데도 탁 트인 형사과 사무실에 성폭행 피의자 41명을 세워 놓고 A양에게 범인을 지목하게 했다.
또 한 경찰관으로부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X들이 남자 꼬시려 밀양으로 가느냐. 내 고향이 밀양인데 너희들이 밀양물 다 흐려놓았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봐 겁난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다.
서울고법 민사26부(강영호 부장판사)는 17일 A양과 어머니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배상액(1,500만원)보다 3배 이상 많은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때는 다른 범죄보다 피해자 보호가 더 필요하고 피의자를 직접 대면하면 보복 등 피해 우려가 커지는데도 공개된 장소에서 피의자 41명을 세워놓고 범인을 지목케 한 것은 피해자 인권보호를 규정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에게 ‘밀양물 다 흐려놓았다’는 등의 말을 한 경찰관이 사건 담당은 아니라 해도 공무원의 직무집행 행위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모욕감과 수치감을 느꼈을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누설한 점만 인정해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이 범인 식별실을 사용하지 않고 모욕적인 발언을 한 부분을 추가로 유죄로 인정해 배상액을 5,000만원으로 늘렸다.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경찰의 야만적 수사 방식을 근절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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