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제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몇 년 전부터 목소리가 전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클래식계의 찬란한 별이었다. 저 푸르른 창공을 뚫고 나가는 우렁찬 목소리도 역시 죽음이라는 숙명을 피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21세기 초입에 대가니 거장이니 마에스트로니 비르투오소(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대가)니 하는 찬사가 털끝만큼도 과장이랄 것 없는 음악가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올 4월에는 러시아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가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그는 지금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역에 누워 스승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와 에밀 길렐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과 담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1974년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을 옹호하는 공개서한을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냈다가 조국에서 추방되고, 91년 탱크 위에 뛰어올라 쿠데타를 막는 옐친을 찾아가 격려한 일화는 명연주와 함께 많은 이의 가슴에 기억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을 찬란하게 수놓은 대가들의 죽음은 뉴 밀레니엄의 첫 해인 2001년에 시작됐다. 클래식 음악계의 대부로 통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유대계 미국인)이 81세로 사망했다.
3년 뒤(2004년)에는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이탈리아)가 82세로 별세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구름을 뚫고 흘러내려오는 듯한 레카토(음을 부드럽게 이어 부르는 것)에 취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듬해 1월 스페인이 자랑하는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가 사망했다. 한 달 후에는 천재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 러시아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74세로 타계했다. 그 괴기에 가까운 테크닉은 소름 끼치는 충격을 선사했다.
■작년에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90세로 별세했다. 그는 귀족적인 이미지만큼이나 기품 있고 우아한 목소리로 독일 가곡을 한층 더 깊이있게 해 주었다.
미국 소프라노 안나 모포도 같은 해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0~70년대 젊은이들은 라디오로, 전축으로, 또는 서울 종로의 르네상스나 명동의 필하모니 같은 음악다방에서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그들의 스러짐으로 텅 빈 자리를 메워줄 새로운 대가들의 탄생을 기다리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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