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성식 정치부장
-예비경선 결과에 만족하나.
“혈혈단신 맨손으로 시베리아 광야에 나온 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 길이 만들어져 여기까지 왔다. 기존 관행이나 조직, 1인2표제라는 특수한 제도 등을 감안하면 감사한 마음이다. 큰 격차로 1등 못해서 아쉽지 않냐고 하는데 대세론은 아주 위험하다. 대세로 이겼더라면 결국은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투표 결과에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도 포함돼 있다.”
-7일 광주에서 정책토론회를 했는데 광주 분위기는 어떤가.
“광주에서도 많은 분들이 열성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나를 비롯해 국민이 광주에 진 빚을 이제 경제와 일자리로 갚아야 한다. 광주가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자부심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사회와 국가에 지도적 역할을 한다는 긍지를 갖도록, 경제가 낙후했다는 마음을 풀 수 있도록 발전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광주 정신을 1980년대 광주에 묶어 두지 말고 21세기로 세계정신으로 승화시키자’고 한 내 말의 참 뜻이다. 광주 정신을 지켜 왔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그런 말을 광주 한복판에서 떳떳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의 꼬투리를 잡아 싸우려는 사람들이야 말로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고, 광주 영령들은 그들에게 가장 분개할 것이다. ”
-다른 후보들은 그런 발언 때문에 손학규는 광주의 선택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얄팍하게 (과거에) 묶어 두려는 행태를 뛰어 넘어 세계로 미래로 가자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이 손 전 지사에게 있다는 말도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은 끝까지 중립을 지킬 것이다. 국가 원로로서 한 사람 편을 들면 대통합에 역효과를 준다는 점을 현명하게 판단할 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 복지사회를 만들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평화공동체를 이룰 사람과 정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일 것이다. 거기에 내가 제일 맞다고 생각한다 해도 결코 표현하지 않으리라 본다.”
-일각에선 손 전 지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워 이익을 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 유ㆍ불리를 떠나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차원의 얘기다. 대통령이 대선에 관여하는 것 자체를 국민은 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더구나 대선 주역으로 비쳐지는 것은 정말 안 좋다.”
-친노 인사들은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배제해선 안 된다는 것인데.
“‘우리는 잘 하는데 국민이 잘 못 본다, 국민이 엉망이다’라는 노무현 정부의 인식은 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는 뭘 잘못했는가를 겸허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반성하고 사과한다면서, 내용을 보면 우리가 뭘 잘못했냐며 지켜온 걸 그대로 반복하고 강조하려고 하지 않나.”
-친노 후보 세 명 지지율을 합하면 40%가 넘는데 위협을 느끼나. 친노 후보 단일화에 대한 견해는.
“그 분들도 ‘단일화 하러 나온 게 아니라 대통령 하러 나왔다’고 말하더라. 정치는 정도로 가야 한다. 단일화를 할 거라면 진작 정정당당하게 했어야 했다. 가뜩이나 신당 창당과 예비경선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또 이합집산 합종연횡 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다. 파가 갈려 과거를 붙들고 늘어져 싸우기만 하면 열린우리당을 문 닫게 한 국민이 왜 신당을 다시 쳐다보겠나.”
.-본선에서 내세울 손학규만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일자리 플러스 통합’이다. 이명박 후보의 ‘경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이 후보가 ‘경제 대통령’을 내세우니 우리는 다른 것을 한다는 식은 안 된다.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은 경제고, 그 핵심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세계화와 첨단산업과 서비스산업을 통해 만들어야지, 내륙 경제나 땅 파기 부동산 경제로는 안 된다. 이 후보보다 더 나은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뒤 통합을 플러스 알파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 사회는 ‘퓨전’인데 정치는 1960~70년대에 머무른 채 분열구도를 통한 세 확장이라는 노 대통령 식 정치공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을 갈갈이 찢어 놓고 너무 많은 마음의 상처를 줬다. 다음 정부 중요 과제는 국민 통합이다. 경제 수치만 747로 올리면 되는 게 아니라, 국민 마음을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 후보가 어릴 때 어렵게 자랐다는 걸 강조하지만, 실제 국민과 어울리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진보를 알면서 보수를 안고 시장경제를 실천하며 영ㆍ호남 지역 감정을 아울러서 통합의 실제 내용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이 후보는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대북관 때문에 집권하면 남북 갈등 뿐 아니라 남남 갈등도 계속될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노 대통령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정권교체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권 재창출 명분이 무엇인가.
“손학규가 신당 후보가 되면 한나라당이 ‘정권 교체’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게 요체다. 어떻게 해서든 신당을 ‘도로 우리당’으로 만들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신당 만들 때 내가 앞장을 섰기 때문에 내가 후보가 되면 정권 교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당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새 정권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우리당에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 왔다. 3월 한나라당 탈당한지 일주일 뒤 아무 준비 없이 제3지대에서 ‘선진평화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국민이 내가 우리당에 들어갈 것이란 생각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
-다른 후보들이 그런 ‘제3의 길’에 동의할 것 같은가.
“그게 우리 사회 현실이기 때문에 그걸 따라오지 않으면 죽는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만 과거세력이라 할 게 아니라 우리 안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나는 두 개의 과거와 싸우고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이라는 개발독재 냉전체제라는 과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스스로를 1980년대에 묶어 두려는 사고 방식, 분파적 이념적인 분열 논쟁이다. 과거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중국의 오늘날이 있고 영국 경제가 왕성하게 발전한 것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노동당의 좌파 외골수 이념에 묶여 있었다면, 등소평이 문화혁명에 짓눌리거나 주자파의 손가락질에 굴복했다면 지금의 영국이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
-지지율이 범 여권 1등이긴 해도 이명박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3, 4배 이상이다.
“조금씩 바뀌고 있고, 그게 무서운 것이다. 지지율이 2%일 때는 5%만 되면 괜찮을 거라고 하고 5%가 되니 10%는 돼야 한다고 하니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가. 지지율과 관련한 수모를 다 겪어 내는 걸 보면서 스스로 ‘대단한 놈’이라고 느낀다. 지금 한창 그라운딩 중이고, 동력이 붙으면 달라질 것이다. 또 신당 후보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50대 50 구도가 될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피를 깎는 노력과 투쟁을 하며 국민을 향해 가야 한다.”
-경선에서 지면 승복하고 당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인가.
“이기려고 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릴 왜 하나.” (웃음)
-다른 후보들은 승복하리라 기대하나.
“물론이다. 신당 후보들은 한나라당 후보들과 달리 대개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군대 있을 때 내 아내와 함께 면회를 왔었고, 이해찬 전 총리도 우리 집에 왔던 사이다. 유시민 의원은 누나 유시춘씨가 (손 전 지사와 서울대 운동권 3인방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와 일도 같이 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운동권이 아니라서 개인적 인연이 없다.”
정리=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손학규 "나를 비판하는 건 몰라도 386의원들 매도는 잘못"
손 전 지사는 8일 오후 여의도 남중빌딩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질문이 나오자 “그 얘긴 그만 하자”고 손사래부터 쳤다. 하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자,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노 대통령과 친노 세력에게 할 말이 많이 쌓인 듯 했다.
손 전 지사는 최근 노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를 고소한 데 대한 자신의 비판을 공격한 친노 진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선에서 겨룰 사람이 전면에 나서야지, 신문에 ‘노무현 대 이명박’ 식으로 보도되는 것은 선거 유ㆍ불리를 떠나 국민에게 좋지 않다”며 “국민은 물러나는 대통령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손 전 지사는 노 대통령이 자신을 ‘보따리 장사’‘탈당한 사람’ 등 표현으로 공격한 데 대해 “내용이 파당적이고 분파적”이라며 “나를 비판하는 것은 좋다고 해도, 나한테 합류한 미래 정치 책임질 사람들(386 의원 등)을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줄을 섰다’는 식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손 전 지사는 이어 “‘우리는 잘했는데, 잘못한 게 없는데 국민이 엉망이라 잘못 본다’는 태도를 국민이 안타까워 한다”며 “실제 잘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버렸을 땐 잘못이 뭔가를 겸허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공과에 대해 손 전 지사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선거문화를 바꾸고, 그 내용과 과정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은 실적”이라며 “하지만 결정적으로 국민을 갈갈이 찢어 놓고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줬다”고 평가했다. 아울러“또 다시 이합집산, 합종연횡 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신당을 외면할 것”이라며 친노 주자들의 단일화 움직임에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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