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컬렉션이 한창인 서울 무역전시장 입구. 뭔가 그림자가 휙 지나쳤다 싶은데 가벼운 소란이 인다. ‘양재희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사인 공책을 들이밀거나 같이 사진 찍기를 청하는 여성들이 몰려든다.
188cm의 큰 키, 가수 비에게서 근육질은 쏙 빼고 여성미는 증폭시킨 듯한 섬세한 실루엣. 국내 최정상급 패션모델로 첫 손에 꼽히는 양재희(24)씨다. 몸과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 그 정점에 서 있는 패션모델로서 양씨가 털어놓는 패션계에서 남자로 살기의 달고 쓴 맛은 뭘까.
■ 무대 위의 황홀경에 미치다
“조명이 켜지고 긴 런웨이(모델이 걸어나가는 무대)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찰칵찰칵 터지는 카메라 셔터음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 모델이라 정말 행복하다고 외치고 싶어요. 마약을 할 때의 황홀경이 그런 걸까요.”
양재희씨는 이번 2008 봄여름 서울컬렉션에서 모두 7개의 패션쇼에 메인 모델로 섰다. 내년 군입대를 앞두고 잠시 쉴 계획이었지만 디자이너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컬렉션은 수입을 떠나 모델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무대. 오디션에 줄잡아 1,000명이 참가하지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간택’받는 사람은 20명 남짓에 불과하다.
“쇼는 20분이면 끝나지만 그 전에 옷 가봉, 리허설, 메이크업 준비까지 전쟁 같은 몇 주를 보내요. 그만큼 전심전력해야 하는 거죠. 가끔 연예인들이 패션쇼 딱 2시간 전에 도착해서 가볍게 무대에 서는 것을 보면 씁쓸해요. 내겐 신성한 무대가 그들에겐 재미 삼아 하는 놀이니까.”
■ 초보모델, 한달 수입 10만원이 아쉽다
“키는 커도 내성적인데다 얼굴이 너무 평범해서 모델은 꿈도 못 꿨었죠.”
양씨는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에 입학했지만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도 부들부들 떠는 무대공포증이라 끼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방황했다. 반전의 계기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성도어패럴 디자인실에서 일하면서. 옷에 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기던 차에 차라리 모델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부모님의 권유가 힘이 됐다. 2002년 지금은 연예계 스타가 된 김민준이 활동하던 모델에이전시 DCM에 들어갔다.
“처음 2년은 암담했어요. 보통 ‘싹수’가 있는 모델은 모델에이전시에 발을 들이자 마자 확 뜨는 데 저는 부르는 사람도 없고,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졌어요. 한달 수입이 10만원이 되면 너무 고맙고 기쁘던 시절이었죠.”
■ 나를 만든 8할은 정욱준, 그리고 메트로섹슈얼
모델로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무렵, 디자이너 정욱준의 컬렉션 오디션을 보러갔다. 20,30대 젊은 남성들 사이에 가장 각광받는 디자이너의 쇼라 꼭 서고 싶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반응은 이랬다. “살이 좀 더 빠졌으면 좋겠는데.”
188cm키에 78kg, 날렵한 몸매였지만 바로 ‘질 나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는 한달 밖에 안 남았고, 방법은 무조건 굶는 수 밖에 없었다. 한달동안 10kg을 뺐다.
“2004 봄여름 컬렉션이었어요. 마침 메트로섹슈얼 붐을 타고 남성적인 미 보다는 중성적인 느낌, 심하게는 여성적인 매력을 갖춘 남성모델이 각광받기 시작한 때 였어요. 평소 여성적이어서 안 좋다는 지적을 받던 제 걸음걸이 조차 갑자기 ‘트렌드에 맞다’며 호평으로 바뀌었죠. 정욱준 쇼 이후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데요.”
■ 여자는 수입차, 남자는 오토바이
2004년에 들어서면서 양씨는 모델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유행통신> 이나 <쎄씨> 같은 젊은 여성지에 주로 얼굴을 내밀던 데서 <바자> <보그> <엘르> 등 내로라하는 패션전문지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화보촬영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수입은? 엘르> 보그> 바자> 쎄씨> 유행통신>
“남자에게 모델은 직업이 아니에요. 직업이라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어렵거든요. 대부분의 모델이 투잡스(two jobs)족인 데는 이유가 있지요.”
보통 유명세와 상관없이 남자 모델의 수입은 여성 모델의 20% 정도다. 남성복 패션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 장윤주 한혜진 같은 여성 톱모델의 패션쇼 한 회 출연료는 300만~400만원을 호가하지만, 톱클라스라도 남자는 50만~70만원 정도다. 패션쇼는 봄과 가을 딱 두 시즌에 집중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비수기인 여름엔 수입 자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셔널 브랜드 광고모델은 외국인 모델이 장악하고 있다. 남성모델들이 강남 일대 ‘완소남 마케팅’을 하는 카페나 레스토랑 서빙맨으로 나서는 것도 고정적인 수입을 갖기 위한 고육책이다.
“남녀 모델의 신분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운송수단이에요. 여자는 외제차에서 내리지만 남자는 스쿠터 수준의 오토바이가 대부분이죠.” 인터뷰장에 나온 양씨의 손에도 오토바이 헬멧이 들려있었다.
■ 몸은 가늘되 배에는 왕(王)자를 새기라?
몸이 재산인 모델에게 최근의 유행은 참 매정하다. 중성적인 분위기, 섬세하고 가느다란 실루엣을 요구하면서 배에는 왕(王)자를 새길 만큼 잘 단련된 몸매를 원한다. 90년대 모델들이나 연예계 스타처럼 어깨와 팔 근육이 발달해서는 무대에 서기 어렵다. 하루 2시간씩 빼놓지 않은 웨이트트레이닝도 근육을 자잘하게 다지는 느낌으로 해야 한다.
성적으로 이용당한다는 소문에 대처하는 것도 큰 일이다. 옷을 입는 것만큼 벗는 것에도 대범해야 하는 것이 모델. 그러니 간혹 당혹스러운 일을 겪는 경우도 있다.
“디자이너중에는 분위기를 보겠다며 옷을 벗은 상태로 한동안 서있게 하는 분들도 있어요. 처음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쁠 수 있지요.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성적인 요구를 하거나 그에 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모델이라는 직업이 워낙 독특하니까 이런 저런 오해도 있으려니 생각해요.”
■ 직업병은 딸국질과 칼로리 계산
양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왜 딸국질을 계속 하느냐”는 지적을 듣는다며 씩 웃었다. “딸국질이 아니고 직업병이거든요.”
항상 몸을 긴장시켜야 하는 모델 일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친구들과 웃고 떠들 때도 습관적으로 ‘흡’ 숨을 들이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배 근육을 조이기 위한 것이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료수를 살 때도 포장지의 칼로리 표기부터 찾아보는 것이나 과자를 만지작만지작하다 그냥 놓아두고 마는 버릇도 모델을 하면서 얻은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모델이고, 주말엔 모델이 아닌 게 아니잖아요. 언제든 불러주면 바로 달려가서 촬영을 하거나 무대에 서야 하니까 늘 스탠바이상태로 몸을 만들어 두어야 해요. 주전부리를 좋아해서 만지작거리지만 감히 입까지 갖다 대진 못하죠. 대부분의 남자 모델이 탄수화물을 엄격히 제한하는 식사를 해요.”
■ 군대이후, 모델과 연예인 사이
당대의 톱모델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모호하다. 여성 모델이 상대적으로 큰 여성패션시장을 무대로 스타일리스트나 패션쇼연출가, 홈쇼핑 호스트로 진출하는 것과 달리 남성모델에게 모델 이후를 기약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모델이 군대를 갔다 오거나 30세를 넘기면 일을 접어야 한다.
“30세 이상의 남성모델을 찾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그저 옷과 무대가 좋아서 뛰던 사람도 군대 갔다 와 정신 차리면 일단 생계문제가 걸리니까 그만둬요.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전업하는 경우는 연예인이 되는 것 뿐이에요. 참 씁쓸하죠.”
양씨 역시 내년 공익근무로 군무를 마치면 연예계 진출을 시도할 예정이다. 모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계는 현실이다. “다행히 요즘 방송가에서도 모델 출신을 선호한대요. 일단 스타일이 좋으니까….” 얼굴만 보면 영락없는 10대 소년 같은 양씨의 눈매가 살짝 찡그려졌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 중성적 분위기 OK… 터프함은 NO
■ 남자모델 이상적인 몸은?
말라깽이 모델이 여성들의 자기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며 국제사회가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남성이라고 다르지 않다. 남성의 신체미를 대표하는 모델들의 체형이 갈수록 왜소화하고 있다.
업계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남성 모델의 사이즈는 키 185~187cm에 몸무게 70kg미만, 허리 치수는 29이하이다. 연령대는 20대 초중반이 선호된다. 남성적인 터프한 매력은 흠모는 커녕 경원시 된다. 잘 생긴 얼굴보다 중성적이거나 여성처럼 섬세한 분위기를 갖춰야 톱클라스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는 필수이지만 90년대 스타모델들이나 요즘의 브라운관 ‘몸짱’ 스타들처럼 좋은 체격도 낙제점이다. 우락부락한 큰 근육대신 작고 부드러우면서 탄력있는 몸매를 요구하기 때문에 아령 대신 맨손체조나 요가를 통해 섬세하게 단련한 몸매가 우대 받는다.
■ 모델 교육기관 어떤 곳이 있나
모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모델 양성소도 꾸준히 생기고 있다. 특히 모델학과의 급증이 눈에 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으로 동덕여대 모델과가 있으나 여성만 등록할 수 있다. 지방에는 혜전대 대덕대 광주여대 대경대 등에도 모델학과가 개설됐다. 기타 모델 교육기관과 달리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지망생들이 몰리는 추세다.
일반 모델에이전시에서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모델 지망생들을 교육하는 부설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DCM, EST미디어, 모델센터, 모델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서울컬렉션이나 각종 패션쇼에 자사 소속 모델들을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에 3~6개월간의 교육기간 중 현장경험을 다양하게 쌓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 "연예인 돼야죠" 남자모델 외도를 꿈꾸다
남자 패션모델의 연예계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1990년대를 풍미한 톱모델 차승원씨가 연기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일군 이래, 모델들의 연예 방송계 진출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김남진 소지섭 권상우씨 등이 의류브랜드 광고모델로 시작했고 최근에도 퓨전사극의 시초격인 드라마 <궁> 의 황태자 주지훈, <커피 프린스 1호점> 의 이언 등이 런웨이 모델에서 스타급 연기자로 전업에 성공했다. 찰스라는 예명을 쓰는 최재민씨는 인기 VJ로도 활동중이다. 커피> 궁>
남성 모델들의 전업은 무엇보다 연예계에서 ‘패션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꽤 좋은 흥행카드로 작용하기 때문. 덕분에 최종 목적지를 연예계로 두면서 패션모델을 교두보로 삼는 사람들도 꽤 늘었다. 모델라인 오승재 팀장은 “불과 2,3년 사이 남자 모델 지망생이 2배 이상 급증했다”면서 “그들 대부분이 연예계 진출을 위해 패션모델은 꼭 거쳐야 할 단계로 인식하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모델 에이전시 DCM의 김혜미 실장도 “직영하는 모델아카데미에 남자는 1기 당 20명 정도를 뽑는데 지원자는 2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남자 패션모델(직)이 뜨는 데는 스타일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 첨병 역할을 하는 케이블방송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M-net이 방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 I AM a Model >은 케이블방송으로는 드물게 시청률 0.6%를 상회하는 히트를 기록했고 최근 동아TV가 방송중인 <세븐 모델즈> 역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온스타일이나 올리브TV 등이 수입, 방송하는 모델 선발 프로그램도 다수다. 세븐>
이들 프로그램의 경우 ‘화려한 의상과 완벽한 몸매의 완소남 완소녀들, 신데렐라의 탄생’ 등 젊은 층이 꿈꾸는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 흥행요인이다.
정재우 동덕여대 의상디자인과 교수는 “남성모델(직)에 대한 선호는 ‘얼짱’ ‘몸짱’ 등 외모가 성공을 위한 보장자산이 된 시대를 반영하는 가장 가시적인 현상”이라면서 “여성모델이 연예계로 진출하기엔 신체조건이 부담스러운 반면 남성은 키 큰 것이 장점으로 인식되는 것도 연예계 진출의 전제조건으로서 모델의 인기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캐릭터패션의 성장세도 남성모델의 입지를 넓힌 한 요인이다. 최근 피코크혁명(공작새 혁명ㆍ1960년대 경기호황기를 맞은 미국에서 남성패션이 화려해진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용어)의 재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남성 캐릭터 브랜드들이 약진하면서 이들을 주로 소개하는 남성 패션지의 창간이 잇따랐다. 자연 남성모델을 요구하는 화보촬영도 늘었다.
패션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모델 지망자도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패션계는 이런 기류를 불안하게 받아들인다. 오승재 팀장은 “남성 캐릭터 패션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패션시장 전체를 보면 여전히 화보촬영이나 패션쇼 등 일거리는 여자에 비해 10분의 2~3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모델 오디션에 참가하는 응시자는 오히려 10에 7명은 남자가 압도적인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모델을 연예계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 한 패션모델계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것이 한 이유. 근본적으로는 한 해 모델아카데미나 모델학과를 통해 배출되는 신인모델만 수백 명을 넘는 데 그들 중 모델의 후광을 업고 연예계에 안착하는 경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초보 모델인데도 스스로 연예인이라는 착각 속에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잡지 촬영 날자를 받아놓고도 잠수를 타는 등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모델이든 연예인이든 직업인의 기본 전제가 성실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최근의 모델 붐이 그들 인생엔 독이 되는 것 아닐까 싶지요.”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 "60, 70년대엔 178cm도큰키때문에 핸디캡"
“1969년 ‘미친놈’ 7명이 모여서 로열남성모델클럽을 발족했어요. 국내 최초로 직업 남성모델의 태동을 알린 모임이었지요.”
국내 남성모델 1세대중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 도신우 모델센터 회장이다. 모델은 그만두었지만 패션쇼 연출 및 모델 양성기관을 운영하면서 7인중 패션계에 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당시 로열클럽 멤버는 도 회장을 비롯 김광수 김현동 이성호 이종재 김사성 오상규 등이었다.
“모델이라는 명칭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어요. 1960년대 중반부터 여성 모델들이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연극이나 영화배우, 미스코리아가 주로 모델로 서던 시절이었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극단 신협에서 말단 배우로 일할 때인데 맞춤복 시대라 모델로 서면 그 옷은 전부 내 것이 되니 재미가 쏠쏠했지요.”
맞춤 양복점에서 1년에 한번씩 여는 신사복 쇼에 서면 보통 12벌의 정장부터 셔츠 양말까지 일습으로 공짜 옷이 생겼다. 대졸 월급이 1만5,000원이면 고급 양복 한 벌이 1만7,000원을 호가하던 시절이라 워낙 옷 입기 좋아하는 성품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연료도 한 쇼에 3만원을 받았으니 수익면에서도 요즘 모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한창 활동하던 60,70년대엔 남자는 175cm에 허리 치수 28인치면 제일 좋은 체격이었다. 도 회장만 해도 178cm의 큰 키가 다소 핸디캡이 됐다. 외모는 눈이 크고 부리부리한 서구형이 인기를 얻었다. 모델에이전시 라인CC를 운영하는 이재현 회장을 비롯, 최호 김석기 등이 이때 데뷔했다.
명문 경복고 출신의 극 예술인으로 패션쇼 무대를 오가자 친지들로부터 ‘왕따’가 됐다. TV탤런트도 예술이 아니라며 백안시하던 시대, 상업적인 패션모델이 된다는 것은 ‘미쳤다’ 소리 듣기 딱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주문복 대회’에 한국 대표모델로 나가면서 직업으로서 패션모델업의 가능성을 봤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는 기성복 시장이 서서히 커지면서 맞춤복과 기성복 시장이 혼재하던 시기였다. 모델들의 신장이 급격히 커진 시기이기도 했다. 180cm이상에 동서양을 합친 듯한 이미지, 커다랗고 두툼한 체형이 이상적인 모델로 각광받았다.
90년대 들어 기성복 시대로 완전히 이행하면서 모델들은 훨씬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패션시장 자체가 신사복부터 영캐주얼, 캐릭터 캐주얼 등으로 세분화했고 해외에서 슈퍼모델들이 석권했듯 국내에서도 주류는 차승원 같은 두툼하고 남성적인 체격이, 영캐주얼쪽에서는 김남진 같은 소년의 이미지를 갖춘 모델들이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키는 커졌으되 체형은 왜소해지고 중성적인 분위기의 남성모델들이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남성복시장 자체가 캐주얼화라는 거대한 유행의 흐름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 회장은 “예전엔 아들이 모델 하겠다고 오면 이튿날 아버지가 찾아와서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린다’며 끌고 갔는데 요즘은 오히려 아버지가 아들을 데려와 모델 시켜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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