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우리 시대의 명저 50] <43>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알림

[우리 시대의 명저 50] <43>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입력
2007.11.05 05:55
0 0

“역사와 구조의 주인 되고자 노력하는 민중과 그것을 저지시키려는 지배 집단에 대한 종합적인 파악 없이 현대 사회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여기에 민중사회학이 요청되는 이유가 있다.”(<민중사회학> 서설에서)

<민중사회학> 은 한완상씨가 1978∼80년에 쓴 글들을 <민중과 사회> (1980)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가 84년에 일부 보완한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사회학적 민중론이다.

한씨는 70년대 들어 신학자와 문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돼가던 민중 논의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가다듬고 체계화했다. 그는 <민중사회학> 을 통해 민중 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사회의 하층을 형성하고 있는 객관적 실체로만 규정되던 민중의 개념을, 현실의 모순을 의식하고 그것을 바꾸어 나가는 주체적 실천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실천적 지식인의 시각으로 기존의 엘리트론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이 책은 ‘난쏘공 세대’가 나름의 이론으로 자기무장화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고 평했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교실에서 배우는 사회학 강의나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 건조한 지식으로는 도무지 문제의식을 터득할 수 없었다… 6ㆍ25사변 이후 조국의 분단은 더 여물어지면서 안으로 정치적 부조리, 경제적 불안정, 공동체의 약화, 가치관의 혼란, 대외의존도의 증가, 권위주의 풍토의 만연 등이 우리의 사회를 시들게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우리의 현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하는 사회학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이다. 현실적합성 없는 사회학을 배웠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이 씌어진 70년대 후반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때다. 한완상씨는 “당시 정권은 권력에 대한 정통성을 갖지 못해 국내외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 결핍을 감추려 압축적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그 결과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했고 노동자는 노동수단을 박탈당했다. 또 이를 비판하는 지식인도 무자비하게 탄압당했다”고 말했다.

이때 ‘민중’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생겨났다. 그는 “민중은 ‘생산 수단’이 기준인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보다 확장된 피억압 존재를 민중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차별당하는 자들이다. 이 범주에는 노동자 빈민 학생 지식인이 한데 뭉뚱그려진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민중은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즉자적(卽自的) 민중과 대자적(對自的) 민중이 그것이다. 즉자적 민중은 잠자는 민중이다. 자기가 민중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민중이다.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조종되고 있으나 그것을 뚜렷하게 깨닫지 못하는 민중이다. 지배집단은 지배질서와 기득이권의 질서에 도전하지 않는 이 잠자는 민중을 계속 잠자도록 교묘하게 통치한다. 반면 대자적 민중은 잠에서 깨어난 민중이다.

잠에서 깨어났기에 자의적으로 초롱초롱하고 자기의 모습을 구조와 역사라고 하는 거울에 비춰볼 줄 안다. 대자적 민중은 자의식의 민중이고, 비판적 민중이고, 행동하는 민중이다.

그는 지배엘리트에서 지식인을 빼내 민중에 포함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은 민중의 세계에 무관심하고 지배계급에 기생하는 ‘지식기사’를 포함하지 않는 집단이다. 책에서 그는 “지식인은 비록 그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생활의 어떤 부분이 철저한 피지배자의 특징과 다소 어긋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민중이라는 투철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통치수단으로부터의 소외를 가장 예리하게 느끼고 있는 대자적 민중이 바로 지식인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민중사회학> 의 인식, 즉 소외된 민중을 향한 관심과 이들에 대한 지식인의 연대의식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중적 인식은 80년대에 들면서 서서히 주류 사회학에 대항하는 대안적 사회학의 기본 인식으로 자리잡아갔다.

김귀옥 교수는 “민중은 70년대 우리 사회에선 혁명적인 언어였다. 80년대 중반 사회구성체론 등 계급론이 적극 대두되면서 민중론은 상대적으로 퇴장했고, 90년대 들어 다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나 시민사회론 등에 밀려 부각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민중이란 개념은 여전히 의미있다. 계급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분단의 문제, 최근 문제 되고 있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을 민중의 개념으로는 함께 감싸안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사회학은 역사현장에서 만들어져야… 실천 않는 지식인은 의미 없다"

까맣고 두꺼운 뿔테 속의 눈동자가 지그시 아래를 응시하고, 가볍게 모아진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 <민중사회학> 표지 뒷면에 실린 저자의 사진은 '고뇌하는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차지해온 위치는 매우 크다. 그의 활동은 학자로서 이론적인 틀만 만드는데 있지 않았다. 서울대 교수 재직 중 민주화운동으로 두차례 해직과 복직을 겪었고, 1980년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사건 조작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총재는 "역사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사회학이 진정한 사회학이다. 그러다 보니 두 번이나 해직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과학을 연구한다면 추상적 담론에서 끝나지 않고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실천적 과제에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중립적 학문인 물리학자라도 자기의 이론이 핵폭탄을 만드는데 이용된다면 반대해야 하는 것"이라며 "바람직한 지식인, 대자적 지식인은 실천의 현장에서 떨어질 수 없다. 실천 없는 지식인은 훈고학적 지식인일 뿐이다. 학문이란 인간을 위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총재는 방송통신대 상지대 한성대 등에서 총장을 지냈고 문민정부 때는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국민의정부에선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학자와 관료로서 직책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해야 할 일의 목적에선 같았다"고 말했다. 그의 목적이란 "억압받고 소외된 인간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부총리 시절 분단에서 오는 고통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에 매진했다. 이산가족의 고통, 냉전에서 오는 민족의 고통 등 어떻게 그 짐을 덜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당시 북한에 송환했던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는 분단에서 오는 인간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가지고 있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민중과 지금의 민중엔 분명 차이가 있다. 한 총재는 "그 당시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 문화적 차별 하면 명백히 떠오르는 대상들이 있었다. 시위하다 탄압받는 학생, YH 노동자로 대표되는 수탈당하는 노동자 등. 그래서 그들은 민중으로 한데 뭉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사회엔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 일방적 지배구조에 의해 억압당했던 민초들이 민주화와 정보화 물결이 합쳐진 지금의 시대에선 각기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적 주체로 변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여당이나 청와대가 정치적 수세에 몰려있는 듯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 총재가 대한적십자사의 수장을 맡은 지 3년째다.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지금 당장의 정치적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양 체제를 인정하고 협력, 화해해 사실상 통일효과를 누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 정도 수준으로 발전하고 스스로 개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 지원은 퍼주기가 아닌 평화만들기"라며 "분단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때는 '평화만들기'와 '불구하고'의 논리 즉 선순환의 논리가 필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증오의 논리로 서로 망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 한완상

1936년 충남 당진 출생

1960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67년 미국 에모리대 사회학 박사

1970년 서울대 문리대 교수

1976년 서울대 해직

1980년 서울대 복직,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다시 해직

1984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복직

1993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1994년 방송통신대 총장

1999년 상지대 총장

2001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2002년 한성대 총장

2004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저서 <현대사회와 청년문화> (1973) <현대사회학의 위기> (1976) <지식인과 허위의식> (1977) <민중과 지식인> (1980) <민중과 사회> (1980) <한국현실과 한국사회학> (1992)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2000)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