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국회에서 열린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의 재산과 경력 등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놓고 격렬한 공방이 오갔다. 통합민주당은 한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 부동산 투기, 경력 부풀리기 의혹 등을 제기하며 예비 야당의 날선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경력 등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기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주력했다. 국회는 21일 허삼수 전 의원 등 증인과 참고인을 출석시켜 이틀째 청문회를 계속할 예정이다.
●박사과정 밟으며 강의한 걸 교수로 부풀렸다
일반적으로 대학서 가르치면 교수라고 한다
먼저 영국 대학교수 경력의 실제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통합민주당 의원들은 한 후보자가 그간 국회의원 선거 공보물에 영국 요크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각각 교수를 했다고 기재했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번 청문회에 제출된 이력서에는 어시스턴트 렉쳐러(assistant lecturer)와 리서치 오피서(research officer)로 돼 있는데 해당 대학과 영국대사관에 문의한 결과, 이 직책은 교수가 아니라 보조강사나 연구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통합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박사과정 밟으면서 강의한다고 했는데 학자금 받으며 강의하고 교수 도와 주는 것이 교수인가"라며 공격했다. 김 의원은 특히 서울대가 발행한 공식 재직증명서에는 캠브리대와 요크대 경력이 빠져 있다고 한 후보자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그는 "국회의원 공보물에 '일본 도쿄(東京)대 교양학부 객원교수'로 표기했지만 인사청문 요청안에는 '객원연구원'으로 적었다. 당시 신분증명서 사본에도 '외국인객원연구원'으로 표기돼 있다"고 경력 부풀리기를 부각시켰다.
한 후보자는 이에 대해 "미국과는 다른 영국 교수제도에서는 교수 타이틀이 모두 다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가르치면 교수라고 한다. 서울대에서도 조교수 부교수 등을 교수라고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김 의원의 좋은 지적으로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교육제도의 차이를 일깨우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다소 비아냥대는 태도로 넘어가기도 했다.
●장남 11억원 부동산 보유… 증여세 내지 않아
통합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한 후보자는 압구정동이 본격 개발되던 1977년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가고 81년에는 논현동에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과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장남(유학생)이 2005년 12월 원효로 한강수 아파트 매입했고, 당시 종로에 있는 아파트 4억원 전세까지 합치면 11억이라는 많은 재산이 있는데 증여세를 안 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95년 미국 MIT에서 박사논문이 차세대 반도체 기계디자인이었는데 모든 과정을 실리콘밸리 그룹에서 돈을 댔다"며 "이후 병역특례로 귀국해서도 벤처회사와 LG_CNG가 데려다 높은 봉급을 줬기 때문에 자기 돈을 충분히 모았다"고 맞받았다.
같은 당 민병두 의원은 "최근 3년 간 매년 2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는 데도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15년 전인 93년 9월에도 21억167만원, 2008년 1월 현재도 21억450만원"이라며 탈세 의혹을 주장했다.
한 후보자는 이에 대해 "인생의 가치를 명예에 두고 평생 살았다. 아들 재산을 한번도 파악한 적이 없지만 이번에 '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깜짝 놀랐다"며 "저와 처는 평생 부동산 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통상부 장관과 국회의원 시절에 춘천군 서면에 임야를 부인이 구입한 데 대해 "맹지(지적도 상에서 도로와 인접하지 않은 토지)에 불과하다"며 "땅값도 하나도 안 올랐다"고 답변했다.
●80년 국보위 활동… 국헌문란 동조 아닌가
통합민주당은 한 후보자가 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의 재무분과에서 활동한 것을 문제 삼았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은 "80년 10월 25일 국보위 활동에 대한 공로로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며 "후보자의 국보위 활동은 국헌문란의 동조자 또는 방조자에 속하는 것이다. 훈장부터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결코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다고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정신적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사과의사를 밝히면서도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나름 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은 "국보위 재직 중 한국은 외채상환 능력을 인정받고, 국제개발은행(IBRD)으로부터 차관 6억달러 제공을 약속받았다"고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친박근혜인 서병수 의원은 "2003년 미국계 펀드 소버린이 SK와 경영권 분쟁을 할 당시 현역 국회의원 신분을 버리고 소버린 사외이사로 추천된 사실이 있고, 2004년 6월 1일부터는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김&장의 고문을 맡고 있다"며 "외국 투기자본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사외이사들은 모두 지배구조에 관심을 가졌고, 제가 어떻게 외국자본의 앞잡이가 될 수 있겠냐"고 항변했다.
IMF책임론ㆍ대북관ㆍ기타
통합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한 후보자는 IMF 외환사태의 직ㆍ간접적 원인인 경상수지 사상 최대 적자(96년 240억달러) 시기에 부총리였다"며 "환란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 6명의 경제부총리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우리는 기초경제 여건이 건실하다""국제금융시장에서 외채 상환에 문제 없다"등 한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IMF 사태에 대해 정부를 운영한 사람으로 굉장히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방향이 틀려진다면 언제든지 아니오라고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답변했다.
한나라당 서병수 의원은 "후보자는 2000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해 민국당 후보로 출마, 당선된 경력이 있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외교부 장관을 수행하기도 했다"면서 "일부에서는 후보자를 '원칙 없이 양지만을 쫓는다'는 비판을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한보로부터 5,000만원의 금품을 받지 않았느냐"고 따졌고 한 후보자는 "무혐의 판결이 났지만 이 소식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고 맞섰다.
그는 햇볕정책에 대해 "정책의 골자는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남북 간 우호협력을 증진하는 것이니 남북에는 이런 우호 증진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고, 한반도 대운하 문제는 "경제적 평가가 필요하고 민자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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