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ㆍ대산문화재단 주최로 9일 오후 서울 중구 문학의집ㆍ서울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의 밤’ 행사엔 유족들이 나와 탄생 100주년 문인들의 인간적 면모를 들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시인의 외손자 김기성(SBS 기자)씨는 “청마와 이영도 시인의 연애담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오해가 많은데, 할아버지 부부는 함께 살면서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을 만큼 금슬이 좋으셨다”고 말했다.
특히 청마의 부인 권재순씨가 남편에게 기울인 정성이 지극했다고 증언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가 펄펄 끓는 가마솥에 고양이가 있는 걸 보고 식겁했다. 청마가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는데, 할머니가 고양이가 효험 있다는 얘길 어디서 듣고 요리하셨던 것이다.” 이런 아내의 정성에 청마는 “죽으면 열녀문 세워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청마가 고향 통영에서 교편을 잡았던 40, 50년대에 동향 출신 작곡가 윤이상씨와 맺은 깊은 교분에 대해서도 말했다. 당시 교직에 있던 윤씨는 중증 폐결핵에 살림도 궁핍한 상황이라, 청마가 “큰 딸(김씨의 모친)을 윤 선생에게 줄 것”이라고 하자 부인 권씨가 “다 죽게 생긴 사람한테 왜 딸을 주느냐”며 타박했다고.
김씨는 “한때 통영 지역 학교 교가 중엔 ‘유치환 작사ㆍ윤이상 작곡’이 많았는데, 아마 윤씨 생계를 도우려는 할아버지의 배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론가이자 국문학자 백철(1908~1985)의 손녀 백지혜씨는 작년 별세한 할머니(최정숙씨)의 유품에서 찾은 할아버지 사진을 여럿 소개하며 고인을 추억했다.
84~85년 조부와 한집에 살았다는 백씨는 “할아버지 하면 2층 서재에서 책 읽고 글 쓰시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며 “안 계실 땐 서재 가득한 책을 꺼내 도미노 놀이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신의주 출신인 백철이 유실수가 많던 옛 고향집처럼 집을 꾸미려 마당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도 손녀의 회고.
조부처럼 국문학도(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의 길을 걷고 있는 백씨는 평론가인 남편 곁에서 여러 문인들을 만났던 할머니의 회고담도 전했다. “할아버지와 친한 작가가 누구냐고 할머니께 여쭸더니 정비석, 임화를 꼽았다.
할머니는 소설가 김내성이 제일 잘 생겼다고도 하셨다. 이상은 어땠냐고 물었더니 ‘너무 신경질적이야’라고 대답하셨다.” 백씨는 호방한 성품의 백철이 고서를 팔아 임화를 비롯한 친한 문인들의 술값을 대곤 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소설가 이무영(1908~1960)에 관한 회고담은 부인 고일신(93)씨와 함께 이날 행사에 온 딸 미림씨가 전했다. 이씨는 “자상하고 따뜻했지만, 글 쓰시느라 늘 바빴던 아버지를 독차지하려 기회만 되면 아버지를 따라다녔다”며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백일장 심사 보는 데 따라갔더니 함께 심사 보던 모윤숙 시인이 ‘저 애는 왜 또 달고 나왔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오랜 구상 후에 속필로 작품을 써내려갔다”며 “자기 원고에 한 자라도 손대면 펄쩍 뛰셨지만, 어머니가 몇 자 고쳐 보여주면 ‘제법이야’ 하며 웃으셨다”고 회고했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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