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리는 종교, 학문, 정치, 우리의 삶에 용해되어야 합니다.”
동서양의 여러 사상과 종교,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의 문제를 천착해온 최민자(53) 성신여대(정치학) 교수가 생명학 연구 3부작을 완결했다. <천부경> (2006년), <생태정치학> (2007년)에 이어 최근 펴낸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 (모시는사람들 발행)는 각권 모두 800~90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스님이나 신부 등 종교인이나, 과학자들이 다루는 ‘생명’이라는 주제를 왜 정치학자가 파고들었을까. 생명에> 생태정치학> 천부경>
“생태 위기나 정치, 종교적 충돌 같은 인류의 총체적인 난국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대한 참 지식의 빈곤 때문입니다.” 2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최 교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예수의 말처럼 유사이래 모든 종교의 핵심이 생명이며 그 점에서 도덕경, 성경, 불경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유교의 태극, 불교의 일심이 곧 생명을 가리킨다는 것이 최 교수의 해석이다.
최 교수는 책에서 물리학 생물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과 유불선(儒佛仙), 민족종교 등을 종횡무진하며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시도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생명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대부분 당위론에 그치고 있다”면서 “생명 문제에 관한 교과서를 내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먼저 물리학 이론을 동원해 “생명의 본질은 파동체”라고 설명했다. “양자물리학이 생명의 본질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으로 파악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학문 풍토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분리해 자연과학에서 발견된 진리를 인문사회과학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 교수는 이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물질의 궁극적 본질이 비물질과 다르지 않다, 즉 ‘정신과 물질은 하나다’라는 것을 말해준다면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말도 이와 같은 뜻이라고 했다. “생명은 파동인데 그것이 모여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다양한 물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장자가 ‘일기(一氣)에서 우주만물이 나온다’고 한 것과 같은 소리다.
최 교수는 생명에 대한 양자물리학의 관점은 신과 인간을 하나로 본 우리 상고(上古)시대의 패러다임과 일치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명의 본체는 신, 하늘, 도, 태극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그 본체의 자기복제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사람과 우주 만물입니다. 따라서 형상은 다르지만 본체는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도 이와 같은 말입니다.”
그는 “생명의 본체와 작용은 하나이고 그 실체는 의식이며 이 우주는 의식이 지어낸 것”라면서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성서의 ‘그림자’라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두루 회통하는 최 교수의 생명 풀이에서는 오랫동안 닦아온 깊은 학문적, 정신적 내공이 느껴진다. 종교사상에 해박하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물리학 책이 술술 읽히고, 오히려 사회과학자들이 쓴 글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요즘 해외의 베스트셀러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의식을 다룬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가들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식의 문제를 쉽게 풀이해서 쓰고 있는데, 학자는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진리를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리를 모르고도 산골에서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도시로 나오면 평생 착하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확실하게 진리를 자각한 사람은 ‘군자는 평상심을 갖는다’는 말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생명 문제에 관해 몇 십년 동안 가졌던 의문이 <천부경(天符經)> 을 읽으면서 다 풀려버렸다”면서 책을 81개 테제로 나눈 것은 천부경 81자, 도덕경 81장의 구조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부경(天符經)>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의 정수가 빠진 공부를 했습니다. 정치학의 경우도 ‘지배와 복종’, ‘권력과 자유’ 같은 이분법적 패러다임에 길들여져 있어서는 궁극적 진리와 통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국가나 인류집단도 개인처럼 자아가 죽는 체험을 해야 하는데, 촛불시위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반성을 했겠는가”라며 “촛불시위가 우리 집단의식의 현주소”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진리의 정수는 여러 종교의 경전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고 요즘은 자연과학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인문사회과학도 열린 사고를 통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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