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일 중국 산둥성의 마늘 재배 농가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10배 이상 올리는 긴급관세(세이프가드)를 부과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마늘 생산량의 95%를 한국에 수출하는 농가들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한중 마늘전쟁의 포문을 연 것은 중국산 마늘 수입 급증으로 우리 재배 농가가 못 살겠다고 아우성쳤기 때문이다. 수입량은 1998년 5,400톤에서 99년에는 2만2,600톤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97년 6만톤이었던 농가의 마늘 재고량은 99년 19만톤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당시 총선을 앞둔 여당은 80여만 명의 분노한 마늘표를 잡기 위해 당정회의를 열어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키로 했다. 중국의 무역 보복을 우려해 긴급관세 부과에 미온적이었던 정부는 정치권에 떠밀려 칼을 뽑아야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마늘표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이 조치는 대륙의 호랑이 꼬리를 잡아 당긴 꼴이 됐다. 중국은 한국이 대중무역으로 연간 100억 달러 가량의 흑자를 내면서 기껏 900만 달러에 불과한 마늘 수입을 봉쇄한 데 대해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했다. 곧바로 5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는 초강경 보복조치를 취했다.
▦크게 놀란 정부는 부랴부랴 백기항복 수준의 협상을 벌인 끝에 무역전쟁을 수습했다. 중국산 마늘 3만톤의 수입을 재개하는 대가로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 금지를 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마늘 파동이 반면교사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특별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 마찰 등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며 한중 마늘파동을 언급했다. 재협상을 고집할 경우 주력품인 자동차에 대해 미국이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늘파동처럼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마늘 분쟁이나 미국산 쇠고기 문제 모두 대내적 압력에 발목이 잡혀 대외 협상을 그르치거나, 충분한 여론수렴과 부처 간 의견조율을 거치지 않아 재앙을 자초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국익과 국민 건강을 저해하는 잘못된 대외협상은 최대한 고쳐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하지만 통상협상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대내적 압력에 이끌려 상대국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무역분쟁은 불가피하다. 서로 윈-윈하는 적정한 수준에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