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제일 처음 쓴 문장은… 수상소감
내가 제일 처음 쓴 문장이 무엇일까?
글이 써지거나 안 써지거나 저는 언제나 궁금해했습니다. 그 문장을 알 수 있다면 지금과 다른 문장을 쓰고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하고 미련한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금과 다른 문장, 이라고 소리내 말해봅니다. 누가 들을까 서둘러 입을 막습니다. 지금과 다른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벌레가 어떻게 사과 속으로 파고들어가 온몸으로 길을 내는지 모릅니다. 저는 고등어의 머리를 칼로 내려치는 상인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의 정체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자고 일어나면왜몸이 돌아가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암살을 기도하다가 자살을 시도한 어느 혁명가의 노래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왜 시인이'이 겨울은 참 무섭군 새 날아간 흔들린 가지 같아'라는 비유를 쓰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육을 거부당한 개들의 아침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달로 간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구명조끼를 입고 저수지를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을 망치는 더 어리석은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모릅니다. 저는 그날 당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언제나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고, 모름과 알려고 하지 않음으로 인해 언제나 세계의 문 앞에서 망설였습니다.
세계의 견고한 문을 애써 힘겹게 열어도 또다시 문이 나온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미루어 짐작에 불과했습니다. 미루어 짐작이 제가 가진 전부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문학이 미루어 짐작으로 완성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날 밤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밤이 낮으로 바뀌기도 전에'경험하지 말아야 할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세계의 문 앞에서 망설이며 미루어 짐작으로 글을 썼습니다. 악습은 오래 지속됐습니다. 미루어 짐작의 글쓰기가 쌓이자 책이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찢고 불태우지 못했습니다.
찢어도 태워도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또다시 미루어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미루어 짐작의 글쓰기로 저는 여기 막 도착했고, 이제 곤죽이 되도록 매질을 당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매질을 당하기 전 비명을 지르고 우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구는 것이 제 육체와 정신에 어울릴지 모릅니다.
저의 문학이라는 말이 저에게도 허용이 된다면 그것은 이제 막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처에 널려있는 언어의 뉘앙스와 제스처, 트릭과 코스튬을 흉내 내며 저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말을채배우기도 전에 말에 짓눌려버린 아이처럼 부끄럽고 어색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저는 문학의 말더듬이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쓸 문장은 무엇일까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첫문장처럼 저의 마지막 문장은 미루어 짐작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다음의 문장입니다."나는 지금과 다른 문장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사과를 파고드는 벌레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벌레가 들어가 사과가 썩었는지 썩은 사과만 골라 벌레가 파고드는지 저는 여전히 알지 못하고 증명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기 위해 공간을 찢고 또 다른공간에 숨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좁은 고시원을 나와 심야의 유흥가를 산책하듯 거니는 것은 저의 가장 외롭고 황홀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웃음과 악취와 주정과 욕망과 슬픔과 경멸이 뒤섞인 거리를 배회하는 척하며 언어를 잃어버린 뒤 언어를 되찾고 싶은 사람처럼 중얼거립니다.
썩은 거리, 썩은 거리, 썩은 거리, 썩은, 썩은, 썩은. 중얼거리다보면 어느새'썩은'의 대상은 나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저는 도처에 널려 있는 썩은 거리를 사랑합니다. 거리가 저를 외면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거리를 서성이며 언어가 부패하도록, 부패할 때까지, 부패해도, 벌레처럼 사랑하고 글을 쓸 것입니다.
저의 사랑에 대해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가족과 동료, 문학 스승들. 그리고그사랑이 잉태한 철없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글에 너무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한국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글에 대한 상이니만큼 숨김없이 남김없이 앞으로의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로운 글쓰기 계속 정진하길" "너무 큰 상을 받아 어리둥절"
젊은 작가의 건필을 기원하며… 시상식 현장에선
한국일보사가 제정하고 GS가 후원하는 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김태용(34)씨?대한 시상식이 11일 오후 3시30분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종승 한국일보 사장은 김씨에게 상금 2,000만원과 상패를 수여했다.
시상식은 심사경위 보고에 이어 시상과 축사, 수상소감 발표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본심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김씨의 수상작 <풀밭 위의 돼지> 는 문학의 수월성뿐 아니라 참신성에 주목하는 한국일보문학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언어, 아버지, 문화의 몰락'이라는 상황을 자신만의 문체로 구현했다"고 밝혔다. 풀밭>
소설가 이인성씨는 축사에서 "그동안 많은 문학상들이 새로운 가치를 찾기보다는 대중적 지명도에 따라 수상자를 선정해왔는데 김씨의 수상은 그런 풍토에 반성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다"며 "김씨는 새로운 글쓰기라는 흐름에 좀더 분명히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김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너무 큰 상을 받아 어리둥절하다"며 "뚜벅뚜벅 저의 길을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소설가 조성기 김미진 강영숙 김도언씨, 평론가 이광호 이재룡 정홍수씨, 출판인 강병철씨 등 100여명의 문인과 지인들이 참석해 수상자를 축하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