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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길 위의 이야기] 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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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길 위의 이야기] 장기

입력
2008.12.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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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장기가 거의 유일한 머리 쓰는 놀이였다. 소년들은 할아버지 아버지들의 장기판 곁에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말 가는 길과 마상상마 마상마상 상마마상 같은 포진법을 터득했다. 장기는 세대를 이어주는 게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배회하다가 문득 옛 생각이 물밀듯해 사이버 장기판에 들어갔다.

최하 등급인 18급부터 시작했는데 불과 두 달만에 4단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장기를 잘 두었었나? 그게 아니라 장기를 둘 줄 아는 사람이 드무니, 잘 두는 사람도 드물어진 것일 테다. 장기는 컨디션에 민감하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급히 해야 될 일을 앞두고 있거나 술에 취했거나 한 상태에서 두면 실수 연발이다. 뇌가 없는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자폭수를 둬대는 거다.

태평하거나 일을 막 끝내고 여유롭거나 한 상태에서 두면 없던 집중력도 생긴다. 내가 이런 멋진 수를 두다니!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묘수를 낸다. 그때의 쾌감이란! 역시 최고의 짜릿함이 발생할 때는 익명의 상대도 최고의 컨디션이고 나도 최고의 컨디션일 때다. 승패를 떠나서 짜장 멋진 게임이었다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장기를 다음 세대에게 이어주지 못하게 한 주범인 동시에, 지켜내는 지킴이 노릇도 하고 있었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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