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만 먹고, 항상 걸어 다녔으며,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잔 다석 유영모(1890~1981)는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진면목을 아는 이는 드물다. 유불선과 기독교 등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두루 회통한 그의 정신세계는 대단히 넓고 깊다.
현대적 의미의 종교다원주의의 선구자로 해석되기도 하다. 그에 대한 연구는 소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왔고, 학계에서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를 통해 공식적인 논의가 시작됐을 뿐이다.
토착 신학을 연구해온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교수가 유영모의 신학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모시는사람들 발행)을 냈다. 없이>
"오늘의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기독교의 길이 다석 신학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 교수는 위기에 빠진 한국기독교가 다시 소생하려면 함석헌, 김교신, 김재준, 이용도와 같은 초기 지도자들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사상적 원점이 유영모라고 말했다.
"유영모는 가장 한국적인 정신의 맥을 갖고 기독교를 이해한 분입니다. 그의 사상을 통해 한국기독교는 성장, 물량화, 기복 위주의 가벼운 기독교가 되기 이전의 정신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유영모에 대한 이해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의 사상이 한국적일 뿐만 아니라 충분히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담론이기 때문에 유영모는 한국이나 동양의 신학자가 아니라 세계의 신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영모가 말하는 하느님은 '없이 계신 분'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사유방식으로 하느님을 이해한 것입니다. 서구의 존재론이니 실체론의 사상적 틀과는 완전히 다르며, 불교의 공(空)의 논리와 만납니다. 그런 하느님이 인간 삶의 밑둥, 본성 속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같은 다석신학의 본질이 서구신학의 최근 경향에 견줄 수 있는 선진적인 것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요즘 목사나 신부들 가운데 예수를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영모는 예수를 구세주가 아니라 자신의 스승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덜 없는 인간'은 유영모의 인간 이해다. 인간도 '없어야' 하는데 '아직 덜 없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영모의 사상을 다산 정약용에서 시작되는 유교적 기독론의 맥락이나 역사적 예수 연구, 동학과도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유영모는 순수 우리말로 철학을 한 분인데, 경전 전문을 우리말로 풀이한 것은 '노자'와 '천부경'뿐입니다. 천부경이 다석 사상의 근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교수는 과거의 유영모에 대한 이해는 소수의 추종자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종교적 사고의 근거로 유영모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영모는 기독교 신자가 된 지 38년째 되던 해에 불교 선승들의 오도송에 해당하는 오도시를 지은 적이 있다.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작곡가 조병옥씨가 20년 전 이 오도시에 곡을 붙여 부른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가 이 교수의 책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지난해 10월 서울 장충동의 대안교회인 겨자씨공동체에서 유영모에 대해 설교를 하는 날, 마침 조씨가 이 곡을 알려주려고 악보를 가져왔습니다. 특별한 인연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유영모는 교회 밖의 인물로 그려졌지만, 교회 안에서 교회적인 인물로 이야기할 때 그로부터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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