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지음/알다 발행ㆍ324쪽ㆍ1만3,000원
"기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사람'을 찾아달라는 한 젊은이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발행인과 저자, 라는 딱딱한 관계(또는 기획의도)를 이런 말로 유기화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는 발행인의 다소 뜬금없는 제안을 책머리에 그대로 싣는다. "제가 찾아달라고 하는 그 사람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삶을 끊임없는 사랑과 기다림으로 조이고 압박하는 사람이에요. 뜨거운 햇볕이 부서져도 서늘한 그늘이 있고… 선생님께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알듯 모를 듯한 제안을 받고, 저자는 '그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도부(도축업자), 때밀이, 누드모델, 바텐더, 교도관, 무당, 노점상, 밴드마스터, 포장마차 주인…. 일터가 아닌 공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그러나 일터에서 만나면 '일'이 곧 굴레가 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신문 기자인 저자는 "지독한 편견"을 들추고 이들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찾는다.
목차에는 도부가 첫번째 '그 사람'으로 올라 있다. "새벽 4시부터 도축장에 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돼지들이 차례차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전살기계(전기충격으로 도축작업을 하는 기계)를 통과하면 똥오줌이 범벅이 된 채 기절해서 나온다… 돼지 왼쪽 발목에 쇠사슬을 걸고 현수(들어올림)한 뒤 목덜미를 찔러 피를 빼는 방혈작업을 한다."(22쪽)
바투 다가가 꼼꼼한 취재로 포착한 '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는 '나'와 너무나 닮아 있어 오히려 낯설다. 그 낯섦은 필경 편견에서 비롯된 것. 저자는 주장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투박한 언어를 전한다. "자기들도 눈이 멀면 알 거예요. 공부 많이 한 대학교수들도 저처럼 사고를 당해서 안마사가 됐어요. 시각장애인이 되면 안마사밖에 할 게 없거든요."(105쪽)
3년에 걸친 인터뷰를 책으로 묶어내 놓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불현듯 삶이 괴롭고, 산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 우리 이웃의 삶을 둘러보면서 힘을 내기를 원해서였다. 사람들의 모진 곁눈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날을 열어가는 이들의 삶을 재조명해보고도 싶었다… 과연 그가 찾아달라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가 찾은 '그 사람', 우리 이웃을 이 책에 소개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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