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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8·끝> 앨런 와이즈먼 '인간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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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8·끝> 앨런 와이즈먼 '인간없는 세상'

입력
2009.10.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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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활동이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구온난화의 진행 정도 등을 보면 그런 우려를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이 지구를 종말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기후변화가 자연순환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지만, 인간의 지나친 활동이 지구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느날 인간만 몽땅 사라지면, 지구는 제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책이 바로 <인간 없는 세상>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이다. 저자 앨런 와이즈먼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애리조나대 국제저널리즘 교수. 2007년 출판된 이 책은 타임, 뉴스위크 등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전 세계 20개 국에 번역 출간됐다.

와이즈먼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자연의 복원력이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인간 이외 생물종이 극적으로, 신속하게 제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간 없는 세상> 의 연대기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지자마자 곰팡이가 건물 벽을 갉아먹고 빗물은 못을 녹슬게 하거나 나무를 썩게 한다. 이틀이 지나면 뉴욕 지하철은 물이 들어차 통행이 불가능해지며 1년 후에는 고압전선의 전류가 차단돼 새들이 고압전선에 부닥칠 일이 사라진다.

20년 후면 파나마운하가 막혀 남북아메리카가 하나가 되고 밭 작물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량되기 이전의 야생 상태로 돌아간다. 300년 후에는 댐이 무너지고 휴스턴 같은 도시가 물에 씻겨 나간다. 500년 후에는 온대지역의 교외가 숲으로 변하며 1,000년이 지나면 영불해협의 해저터널 정도만 빼고는 지구상의 인공구조물이 사라진다. 10만년 후에는 이산화탄소가 인류 탄생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지며, 30억년 후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생명체가 지구상에 번성한다.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만이 영원히 우주를 떠다닐 것이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만 없애는 등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다른 생물종은 그대로 남은 채 인간만 지구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가 '인간 없는 세상'을 가정한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그 동안 지구에 가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고발하기 위한 의도이다. 사실 인간은 영역을 넓힐 때마다 한 지역의 생물을 파멸의 위기로 몰아갔다. 다른 종을 멸종시키는 인간의 킬러 본능은 다른 말로 하면 탐욕의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탐욕을 고발하는 책이고,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도 결국 인간의 탐욕이 사라져야 발휘될 수 있다는 냉정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불가능할까. 앨런 와이즈먼은 이에 대해 "공존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거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지금과 같은 인간 중심의 산업,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와이즈먼은 인터뷰에서 "클린 에너지의 개발, 탄소 배출량의 최소화, 식량 증식을 이유로 한 다른 생물의 서식지 파괴 중단, 재활용에 근거한 산업 시스템 구축 등의 조치를 통해 인간 활동과 자연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구의 관리. 지구에는 현재 67억명이 살고 있으며 지금도 4.2일마다 100만명이 증가하고 있다. 그 많은 인간이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대기의 균형을 깨고 극지방의 빙하를 녹였으며 해수면을 상승시켰다. 만약 인류가 인구 조절에 나서지 않으면 40년 내에 93억명에 이르는데, 지구의 생태 시스템은 그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와이즈먼은 "인간의 활동은 증가하지만 지구는 결코 증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 고려에 따른 것일 뿐, 지구 차원에서 보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이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는 등 과거의 경제활동 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기존 방식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노력이라도 겹쳐지면 결과적으로 지구 생태계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인류와 지구 모두를 위해 "인간은 없어도 지구는 있지만, 지구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와이즈먼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 저자 앨런 와이즈먼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 을 쓰기 위해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아마존, 북극 등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여러 곳 방문했다. 그 중 한 곳이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DMZ 보전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와이즈먼은 "한반도를 둘로 나눈 슬픔이 기적을 만들었다"며 "DMZ는 국제적인 희망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DMZ가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산물이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DMZ에 스라소니, 사향노루, 담비 등 야생 동물들이 살 수 있게 된 것은, 끔찍한 참화를 딛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연적 복원력의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DMZ를 국제평화공원으로 선포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그는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와이즈먼은 "국제평화공원이 되면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전쟁으로 파괴된 자연이 다시 기적을 이룬 것을 증언하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한이 DMZ라는 공유지를 보존하기 위해 협력한다면 양측은 더욱 밀접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고 그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DMZ의 개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적잖이 걱정을 했다. 수도권에 무려 2,00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DMZ가 개방되면, 개발업자들이 게걸스럽게 이 지역을 파고 들어올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 '책, 미래와의 대화'를 마치며

한국일보가 제정한 최고 권위의 출판시상제도이자 책ㆍ출판인의 축제인 '한국출판문화상' 이 올해로 꼭 50년이 됐다. 이 땅의 출판 반 세기와 함께 해온 한국출판문화상 50년을 기념해 연재한 '책, 미래와의 대화'는 책으로 우리 현실을 점검하고 미래를 조망해 보기 위해 기획됐다. 21세기와 더 먼 미래에 우리 삶의 조건에 영향을 줄 다양한 담론을 살핌으로써 미래를 보는 우리의 태도를 정리하자는 취지였다.

'책, 미래와의 대화'는 이런 의도에서 당대의 명저로 꼽히는 책들의 국내외 저자와 직접 만남이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 생생한 발언을 듣고 소개했다. 6월 9일 게재된 시리즈 첫 회에서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저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를 통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드러낸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살피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지식의 배타적 생산과 보급을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지식혁명을 예견한 <집단지성> (피에르 레비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먹는다는 행위의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 (슬로푸드 운동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 가족 개념과 가족관계 메커니즘의 변화를 보여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독일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인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인권의 문법>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기후변화의 역사와 실태를 보여준 <기후창조자> (팀 플래너리 호주 맥쿼리대 교수) 등이 뒤를 이었다.

행복의 중요성을 다룬 <행복의 역사> (대린 맥마흔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직접행동> (에이프릴 카터 영국 코벤트리대 교수), 21세기 공교육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핀 <교실의 고백> (미국 교육운동가 존 테일러 개토), 인간복제 시대의 고민을 담은 <생명윤리와 법> (권복규 김현철 이화여대 교수), 다문화주의의 유효성에 의문을 던진 <사회의 재창조> (영국 철학자 조너선 색스), 영어의 득세와 소수언어의 위기를 경고한 <언어의 종말> (영국 언어학자 앤드류 달비), 생산성의 증가가 실업을 야기한다는 <노동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미국 와튼경영대학원 교수), 한 사회의 건강은 그가 속한 사회의 성격에 의존한다는 <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교수), 배부른 제국과 굶주리는 세계의 모순을 규명한 <식량전쟁> (라즈 파텔 미국 예일대 방문교수), 세계를 보는 창으로 지정학을 소개한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콜린 플린트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우주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엘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물질문명과 경쟁체제가 극도로 발달한 이 세상에서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예측이 엇갈린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자신있게 하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 그에 따른 준비는 절실해진다. '책, 미래와의 대화'로 바라본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기도 하고, 지금의 상상력으로는 그릴 수 없는 낯선 모습이기도 했다.

'한국출판문화상 50년' 기획의 두번째로 22일(목)자부터는 국내 출판 현장 50년의 과거와 현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책의 풍경, 2009'(가제)을 연재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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