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출판사가 3만을 넘어섰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 150개였으니 62년 만에 200배 이상 증가했다. 2007년에는 2,874개사가 새로 등록했으니 하루 8개씩 출판사가 생긴 셈이다. 출판사 설립이 이처럼 활발한 것은 출판업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벤처'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극명히 보여주는 존재가 1인 출판사다. 이들은 기획과 편집, 마케팅까지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 내며 출판 지형도 위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전체 출판사 가운데 1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내는, 실제로 출판 활동을 하는 회사는 10% 정도다. 그리고 이 가운데 약 26%가 1인 출판사인 것으로 집계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0여년 전부터 1인 출판사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기획, 제작, 인쇄, 유통, 판매 등 출판업의 각 단계가 분업화하고 아웃소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호(SOHO) 형태인 1인 출판사는 대부분 기획 업무만 직접 하고 나머지 일은 외주 업체에 맡긴다.
1인 출판사는 대개 출판계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독립해 차린 회사들이다. 7, 8년 전만 해도 영업직 출신이 주로 창업했지만 최근엔 능력을 인정받은 편집자가 자신의 브랜드로 독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1인 출판사 운영자는 "1인 출판사가 의미 있는 책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인데 이 시점은 기획력 곧 원고를 고르는 안목과 제작 능력이 있는 편집자들이 1인 출판사를 차리기 시작한 시기"라고 말했다.
1인 출판사의 강점은 뚜렷한 개성과 신속성이다. 이들은 소수 시장에 특화된 책, 예컨대 장애인 자녀 교육법이나 20~30대 커리어우먼의 애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재빠르게 개발해 '작지만 알찬' 성공을 거둔다. 의사 결정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조직체보다 스피드에서 앞서는 것이다. 반대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오류를 걸러내지 못하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해 실패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1인 출판은 '도 아니면 모'라는 얘기가 나온다.
출판인들은 온라인 유통 구조의 등장으로 마케팅 업무가 간소화하고 판권을 중개하는 에어전시 및 각종 외주 시스템이 확립된 2004~2006년을 1인 출판의 전성기로 꼽는다.
그러나 최근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기가 점점 더 힘겨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출판시장이 자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 채널이 대형 온ㆍ오프라인 서점 몇 군데로 좁혀지고 출판사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마케팅에 드는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인 출판사인 다른의 김한청 대표는 "예전에는 적은 비용으로도 광고를 할 수 있었고 신문에서 호평을 받으면 매출로 이어졌지만, 이젠 마케팅에 돈을 쏟지 않으면 책을 독자에게 노출시킬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서점의 경우 건별 광고 대신 1,000만원에 가까운 패키지 광고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자본력이 약한 1인 출판사가 대형 출판사에 맞서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김 대표는 "1인 출판사 가운데 3년을 버텨내는 비율은 30% 정도"라고 말했다. 대형 출판사가 특화된 책을 내는 자회사나 임프린트 조직을 운영, 1인 출판사의 영역을 파고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자본 논리에서 벗어난 색깔 있는 책의 출간이라는 차원에서, 1인 출판사의 의미와 가능성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책이란 결국 내용이 핵심이고, 그걸 쓸 수 있는 필자와 펴 낼 수 있는 출판사 사이의 네트워킹은 다양할수록 좋다"며 "독자의 욕구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면, 재벌급 출판사와 맞서 밀리언셀러를 내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 '…조선후기 한문학' 으로 저술상 받은 강명관 교수
"대한민국은 이미 성년이 된 국가 우리 안의 타자도 인정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은 성년이 된 국가입니다. 우리 안의 타자를 정직하게 인정할 때가 된 것이지요. 그것을 거부한다면 속 좁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소명출판)으로 제4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수상한 강명관(51)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서양식 역사발전론에서 벗어나 우리의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찾자는 뜻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공안파와>
취지가 그런 만큼 <공안파와…> 는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그 논지를 출발시킨다.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 후기 우리 사회의 내부에 근대화의 맹아가 존재했다는 이론으로 일제의 식민주의론 극복을 위해 1970년대에 등장했다. 내재적 발전론의 시각에서 조선 후기 비판적 지식인들의 문예 이론과 작품을 바라보면 그것은 자생적 근대 민족문학의 단초가 된다는 게 학계의 통념이었다. 공안파와…>
그러나 강명관 교수는 이 책에서 박지원, 이덕무, 이옥, 이용휴 등 조선 후기 거장들의 이론과 작품이 오히려 중국 공안파(公安派)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공안파는 봉건적 권위와 도덕을 배격하고 복고파 문학에 도전했던 명(明)대의 문예 집단이다.
강명관 교수는 박지원 등이 공안파의 논리를 따랐다는 사실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입증하면서 이들에게서 민족과 근대성, 나아가 내재적 발전론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주의의 탈피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서양의 발전 경로를 따른다는 점에서 서양중심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박지원 등의 성취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강 교수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외부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해해 자기 독창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그들이 공안파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은 현대 한국의 인문주의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마르크스나 들뢰즈를 수용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강명관 교수가 내재적 발전론과 조선 후기 민족문학에 의심을 품은 것은 1992년부터다. 당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도중 조선 후기 문장가들의 작품에서 공안파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후 당시 문인의 창작과 비평이 공안파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문제 의식을 갖고 책을 내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주장에 학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문이나 저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강명관 교수는 "나의 주장이 선배 학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후배들에게는 민족문학이나 내재적 발전론의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 문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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