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제작자 이인아(42)씨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씨는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 등으로 이름 높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단짝 제작자로 일하며 세계영화계에서 지명도를 얻었다.
'밀리언달러 호텔'(2000)로 벤더스와 인연을 맺은 그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랜드 오브 플렌티' '돈 컴 노킹' 등을 제작했다. 2006년 루마니아 프랑스 합작의 '내가 세상의 마지막을 보낸 방법'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의 최고여자연기자상 수상을 이끌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8'에는 공동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8'은 벤더스와 제인 캠피온, 미라 네이어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로 빈곤과 기아 등 전 지구적 문제를 다룬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나고 자라고 방송 PD 생활까지 했던 이씨는 "한국 영화는 어려서부터 거의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럽식 사고 때문에 한국 감독과는 일을 함께 하지 못할 듯 하다"고도 했다. 그래도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한국 감독이 해외에서 잘 되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도울 게 있다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화인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감독이 관객의 입맛에만 맞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제작자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영화계는 너무 감독 중심이고 수직적인 구조라 제작자가 일하기 힘들다. 차가 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도 말을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는 쓴 소리도 했다. 그는 "제작자가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 원작의 '인 더 미소 스프'를 한일합작으로 준비 중이다. 메가폰은 벤더스가 잡을 예정이다. 대만의 신인 감독과 함께 하는 다큐멘터리도 그의 마음 속에 담겨 있다.
세계를 무대로 세계적인 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한국문화를 향해 있다. 그는 "언젠가는 한식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포부엔 유쾌하지 않은 유년의 경험이 드리워져 있다. 그는 "어릴 적 '한국에서 왔다' 하면 다들 '그런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일본인이나 중국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고 말했다. "음식을 보면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음식을 통해 삼국의 문화 차이를 확실히 전하고 싶습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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