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억울해했다. 일정상 24일 만나 인터뷰를 한 후 국민권익위의 조사권, 계좌추적권 추진 문제가 불거져 야당의 집중 공격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견제를 받게 되자 29일 다시 전화인터뷰를 통해 '할 말'을 쏟아냈다. 그는 야당에 대해선 "그 쪽이 집권할 때 추진했던 일"이라고 반박했고 사전상의 부재를 질타한 한나라당에 대해선 "여론 수렴이 끝나면 당연히 당정회의를 할 것"이라며 섭섭해했다. 그는 여전히 거침없었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수정반대 대목에서는 직접적인 비평 대신 일반론을 얘기하며 에둘러 넘어갔다.
_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수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사과했는데요.
"용기있고 지혜롭게 잘 설명했다고 봅니다."
_야당은 국민을 향한 일방적 통보라고 비난하고 있고 박근혜 전 대표도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예의를 갖춰 국민들에 설명했으면 더 이상 반대를 위한 반대가 없었으면 합니다. 대통령이 백년대계 차원에서 고심한 것을 놓고 정치공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_그 말씀은 야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하는 얘기입니까.
"일반론적인 얘기라고 해둡시다."
_이명박 정부가 2년이 다 돼가는데 재야, 야당 국회의원을 하면서 그렸던 바람직한 정부상과 일치하는지요.
"정치의 본질은 없는 사람, 해도 안 되는 처지의 사람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경제가 커질수록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를 줄이는 것이 친서민이고 중도실용입니다. 이를 위해선 공직이 중요하고 청렴, 반부패가 필수적입니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시절에 그렸던 그림입니다. 다는 안됐죠. 이명박 대통령도 이제 그 길로 들어섰다고 봅니다."
_이명박 정부는 역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절차를 무시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내사설이 나오는데, 이를 두고 과거회귀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 정권 들어 정치보복을 한 바 없습니다. 과거 정권,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는 전화를 걸어 사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_정연주 전 KBS 사장의 퇴진은 사법부에서 잘못된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그런 점도 없지는 않겠지요. 정권 바뀌면 일 좀 해야 하는데, 국민들도 (기관장 교체를) 양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 보복으로 멀쩡한 기업이나 사람을 못 살게 한 적은 없습니다."
_비슷한 맥락에서 보수 논객이 '정부가 종합편성방송으로 언론 길들이기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더군요.
"(웃음)누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언론 길들이기를 할 배짱이나 강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_이 위원장은 청렴을 강조하지만 이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 검증기준이 약해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과거 야당 시절 위장전입 등으로 문제된 고위공직자들을 많이 날리지 않았습니까.
"날린 적이 있지요.(웃음) 우리나라 경제력은 세계 15위권인데 부패지수 39위 입니다. 경제력과 함께 청렴해져야 선진국이 됩니다. 그 핵심이 공직자입니다. 요즘 매일 터지는 게 공직자 비리입니다. 그래서 정부 예산 100만원이상 받는 기관에 대해선 청렴도 평가를 하려 합니다."
_고위공직자들 청문회에서 나온 문제들도 조사합니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취임한 이후 문제된 공직자에 대해서만 청렴도 평가를 하겠다는 겁니다."
_국민권익위를 총리실 산하에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바꾸고 조사권과 계좌추적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위원장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려 한다'는 등 말들이 많습니다.
"오해예요 오해. 인지조사를 하거나 무차별 계좌추적권을 갖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국민권익위는 장차관, 시도지사, 판검사, 장군,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부패혐의 신고가 있으면 이를 조사해 고발할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실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애매한 규정으로 관련 자료를 보고 조사하기가 어렵게 돼있다. 그래서 부패 신고가 된 고위공직자에 한해 조사하고 금융자료를 열람할 근거를 마련하자는 겁니다. 야당이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해놓고 지금 비난하는 것은 이재오를 견제하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_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바꾸자는 이유는 뭡니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하자는 법안은 이미 17대 국회에 제출됐었습니다. 17대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된 것을 다시 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위원장이 돼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정권에서 고충처리위 청렴위가 다 대통령 직속이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 총리실 직속으로 하니까 야당은 이들 기관들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_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은 당과의 사전 상의 필요성을 지적하던데요.
"입법예고는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단계입니다. 앞으로 공청회, 차관회의, 국무회의 거쳐서 정부안이 확정되면 그 때 당정회의를 하는 겁니다."
_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필요성을 거론했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실패했고 김준규 검찰총장도 국회 답변에서 반대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진짜 할 생각입니까.
"감사원이나 검찰에 두둔, 어디에 두둔 고위공직자 비리문제를 다루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독자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회의체 같은 것, 연석회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먼저 시작하다 보면 그런 조직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관련기관 간 실무선에서 조정해 가고 있습니다. 회의체 형태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민감한 반응을 보입디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모양입니다.(웃음) 얼마 전 태국에서 탁신 전 총리를 검찰이 기소하지 못하자 부패방지위가 했습니다."
_다른 인터뷰에서 검찰 비리 수사를 검찰이 맡는 게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죠. 한다고 한들 면피용으로 하겠지요."
_연석회의나 공수처, 공직자 평점제 등이 결국 공직사회 장악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야당의 정치공세죠. 평소 야당 의원들이 왜 고위공직자 청렴교육을 안 하냐고 합디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이런 것 하지 말라고 합니다."
_검찰총장 회식 자리의 촌지 사건도 보고받았는지요.
"카타르 도하의 반부패 세계포럼에 참석했을 때 들었습니다.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지 조사한 결과 공무원행동강령에 저촉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_좀 다른 내용이지만 위원장과 가까운 후배 중진의원이 경기도 골프장 수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도되는 데 전후 사정을 들어봤습니까.
"골프장 사장을 만난 시점이 2007년인데 골프장 허가는 그 이전에 다 끝났다고 하더군요. 골프장 허가와 관련 없다고 들었습니다."
_4대강 사업으로 가보겠습니다. 해당 지방에서는 돈이 오기 때문에 찬성합니다. 그러나 과연 재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습니까.
"소관부서 아니라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정부 정책은 국가 미래를 보고 추진합니다. 파리 에펠탑, 뉴욕 운하도 건설 당시 반대가 거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를 먹여 살리지 않습니까."
_우선 순위의 문제겠지요.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구축이 더 필요다는 지적입니다.
"그것도 정부가 다 추진하고 있습니다."
_이명박 정부의 공신인데 국민권익위원장이라는 모자가 작다는 느낌은 안 드는지요.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모자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일이 더 중요합니다."
_권익위원장 맡은 지 두 달인데, 무엇이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느꼈습니까.
"우선 국민들의 고충이 정부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깊고 넓습디다. 이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 누적된 것입니다.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_현장 방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다는 게 소신입니다. 그런데 자리가 높아질수록 현장을 멀리합니다. 각료나 국회의원들이 현장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_최근 목포 광양 울산 등 현장 방문을 통해 오랜 민원을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이재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소통령'이라는 시니컬한 반응도 있습니다.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겁니다. 이재오이기 때문에 된 게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도 현장에 애정을 갖고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동안 공직자들이 귀찮아서 안 한 거죠. 울산 문제도 5번이나 내려가서 된 겁니다. 힘이 아니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관공서는 명분, 주민은 실리를 찾아주면 해법이 나옵니다."
인터뷰=이영성 부국장
정리=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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