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파'에 이어 '신(新) 서정'이 오는가.
1980년대생 시인들이 한국 시단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황병승 김행숙 김언 김경주 김민정씨 등 첨단 미학으로 무장한 1970년대생 미래파 시인들이 한창 주목받던 2000년대 후반부터 등단, 개성적인 시 세계를 찬찬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 평론가 신형철씨는 "아직 첫 시집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단정할 순 없지만, 이들의 시적 경향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좀 더 적극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평론가 고봉준씨는 "기존 형식이나 언어에 맞서 딴죽을 걸고 비틀었던 미래파와 달리, 80년대생 시인들은 그런 적대감이나 대결의식에서 자유로워 보인다"고 했다. 실천문학 주간인 손택수 시인은 "이들은 미래파에 의해 기존 서정시의 틀이 해체되는 걸 경험한 세대이다 보니, 한층 진화된 서정과 소통 가능한 시어로 미학적 균형을 복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서효인(29), 김이강(28), 최정진(30), 이우성(30)씨는 이들 신세대 시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이다. 네 사람은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민음사, 창비와 각각 첫 시집 출간 계약을 맺었다. 등단 5년차인 서씨와 김씨는 올해, 4년차인 최씨는 내년에 시집을 낸다. 서로 가까운 글벗이기도 한 이들을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났다.
_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최정진=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서 진로를 바꿔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취미로 쓸 땐 몰랐는데 전공이 되니까 시가 참 어렵더라.
▦서효인= 대학 마치고 학원 강사로 일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도 했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돈이 안되더라도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 싶어 글을 쓴다.
▦이우성= 대학 새내기 때 선배에게 이끌려 시 공부 모임에 갔다. 똑똑하게 생겨서 가입시켰다더니 웬걸, 사람이 없었던 거다. 내가 빠지면 모임이 사라질 것 같아 버텼더니 여기까지 왔다.(웃음)
_ 시가 안 읽히는 시대에 왜 시인이 됐나.
▦김이강= 우리 세대는 소수자적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음악만 해도 홍대 인디밴드를 많이 찾는다. 독자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함께 시를 쓰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밌게 시를 쓸 것 같다.
▦서효인= 시는 어차피 소수만 읽게끔 돼있는 것 아닐까. 시를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건 잘 상상이 안된다. 아이러니하게 독자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형식들이 터져나오는 것도 같고.
▦이우성= 그런 다양성은 시인 각자의 스타일에 호응하는 마니아 독자층이 있어야 잘 유지될 수 있을 거다. 내 느낌엔 '이 정도는 읽어야 교양인이다'라는 자각이 확산되면서 문학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 영향 받은 시인은.
▦서효인= 백석을 좋아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도래로 시인들이 외래어처럼 겉멋 든 단어를 자주 쓸 때 백석은 꿋꿋이 촌(村)과 태생의 언어를 썼다. 결국 지금까지 읽히는 건 백석의 시다.
▦김이강= 김수영을 읽으며 시인은 자기검열 없이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상순, 이수명의 시에선 머리가 아닌 육체적으로 공명(共鳴)을 느끼게끔 언어를 다루는 방식을 배운다.
▦최정진= 최근 내 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선배 시인이 아니라 애인이다. 연애로 인한 새로운 변화들을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다. 지난달 이사하면서 바뀐 공간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_ 당신들의 시는 미래파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최정진= 우리 또래를 섣불리 한데 묶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시를 쓰는데도 미래파로 묶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선배들이 있다. 만약 우리들의 시가 선배들과 다르다면 그것은 시간이 가면서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이우성= 예나 지금이나 시단엔 고유한 결을 갖고 예술적 혁신을 추구하는 시인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어떤 조류가 생성된 것처럼 보여도 그건 우연일 뿐이다.
_ 어떤 시를, 어떻게 쓸 건가.
▦김이강= 선배들의 시를 현재적으로 읽어내고 싶다. 과거의 시가 현재와 닿을 수 있는 접점을 찾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 쓰기가 가능한 것 아닐까.
▦이우성=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다. 내게 시는 지워져가는 나를 끊임없이 구체화하려는 노력이다.
▦최정진= 멀리 있는 것보단 가깝고 예민한 문제를 끌어당겨 시를 쓰려고 한다. 감각보다는 감정에 집중하고 싶다.
▦서효인= 시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상황과 내러티브를 만들고 그걸 내 언어로 표현하는 놀이. 진짜 놀이꾼은 놀이할 때 한없이 진지해지는 법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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