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등 여권 주류가 세종시 수정안 처리 방법을 놓고 국민투표 카드를 일단 후순위로 밀어놓는 분위기이다. 아직 여당 내부에서 절충안을 비롯한 해법이 도출되지 않은 상태이고, 더구나 4월 국회에서 야당과 격렬한 논쟁이 남아있는 만큼 지금 당장 국민투표를 이슈로 꺼낼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2일 "현재 국민투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당이 결론 내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국민투표 실시 여부에 대해 '현재'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딱 부러지게 선을 긋지는 않았다. 현재 국민투표를 검토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세종시 국민투표 방안을 '휴화산' 이라고 표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이날 "현재로서는 국민투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하면서도 "대통령이 지금 목검 들고 하는 심정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 것도 국민투표 카드를 살려놓은 것이다.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대의정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국민투표 실시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친이계 핵심인 정두언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세종시 의원총회가 끝나고 중진협의체에서 세종시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국민투표는 시기상으로 맞지 않다"면서도 "학자들과 얘기해보니 세종시 국민투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부가 국민투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세종시 논란의 후유증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의결한 사안을 18대 국회에서 수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인데다 이런 선례를 남길 경우 19대 국회에서 다수당 의지에 따라 재번복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현정부 임기 내에 세종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여권 주류의 생각이다.
여기엔 '중요한 공약을 번복할 경우에는 전체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판단도 들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ㆍ16 쿠데타 직후의 민정 이양 약속과 1971년 대선 당시의 '3선 연임 뒤 퇴임' 공약을 뒤집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중간 평가와 내각제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개발과 관련한 세종시 문제는 차기 정권에서도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보고, 국민의 뜻을 물어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생각이라고 한다.
염영남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