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는 사실 역대 중국 왕조 가운데서도 가장 강성했던 국가로 꼽힌다. 동쪽으로는 당시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고구려를 제압해 요동을 장악하고,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고구려 유장의 아들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의 이슬람 국가들을 휩쓸며 동서 비단길을 열었던 세계사적 사건도 당조(唐朝)의 일이다. 이 원정으로 당은 세계 제국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제지술, 나침반 등 중국의 앞선 문물이 서방에 전해졌다. 당의 전성기에 1대1로 그에 맞설 만한 국력을 가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 그런데 알다시피 '당나라 군대'는 군기가 엉망인 군대를 일컫는 속칭이다. 그토록 강력했던 당의 군대가 왜 이런 수치스런 이미지를 얻었을까. 어원을 놓고 떠도는 설들을 정리하면 대략 두 가지다. 안사(安史)의 난을 전후해 당 왕조가 부패와 무능으로 급속히 쇠락하면서 당군도 오합지졸로 전락, 온갖 이민족에게 얻어터지기만 하면서 이 말이 생겼다는 것이 하나다. 또 오랫동안 중국에 경외심을 지녔던 일본이 막상 청일전쟁서부터 여러 차례 맞붙어보니 도무지 군대라고 할 수도 없는 중국군의 한심한 실태를 확인하고는 쓰기 시작했다는 설이 다른 하나다.
■ 엊그제 국회 국방위에서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이 "이대로 가면 군이 옛날 당나라 수준이 될 것"이라고 기강해이를 질타하면서 당나라 군대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천안함 전사 장병들의 영결식에서 봤던 장군들의 경례자세, 현장 정리의 허술함 등이 계기가 됐다. 그는 이날 국회에 출석한 군인들의 군번줄 미착용을 확인하고도 "정신들이 나갔구만"하며 거듭 혀를 찼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그는 군 시절에 엄정한 군기를 강조하던 원칙주의자로 소문난 인물이다. 이번에 군이 속절없이 당한 일에 잔뜩 화나있던 그에게 현역들이 제대로 걸린 셈이다.
■ 한ㆍ미 양국군 비교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군은 장교와 장군의 경쟁력이 높고, 한국군은 병사의 질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래서 미군이 더 강하다는 얘기였다. 각개전투에만 강한 군을 강군이라고 하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장비와 규모 등은 제외한 것이다. 너무 일반화한 것이지만 절묘하게 핵심을 찔렀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군기를 포함해 군의 운용ㆍ작전 능력이 거의 전적으로 지휘관의 능력과 자질에 달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군 지휘부가 그의 질타를 설마 경례나 군번줄 문제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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