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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탕집 단속 현장 가봤더니…살무사 등 수백마리 구덩이에 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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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탕집 단속 현장 가봤더니…살무사 등 수백마리 구덩이에 우글

입력
2010.07.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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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탕도 있나요?"(기자) "구렁이 큰 거랑 이것저것 넣고 한 번 끓이면 한 달치 정도인데 300만원입니다."(뱀탕 판매업자)

수화기 너머의 뱀탕 판매업자 김모(59)씨는 한술 더 떴다. "싸구려는 쓰지 않는다. 직접 구렁이를 키우는데 믿고 먹어도 좋다." "뱀들을 직접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먼저 입금하면 뱀탕을 끓이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환경부는 지난달 16일부터 한 달간 전국의 뱀탕집 등에 대한 집중단속을 하고 있다. 일부 연예인들이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뱀탕 예찬론'을 펴자 그릇된 보신문화가 퍼질까 봐 제동에 나선 것이다.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엔 구렁이, 살무사 등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된 뱀을 포획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이를 먹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달 말 단속반원과 함께 찾은 김씨의 뱀탕집은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산속에 있었다. 아산시청 환경보호과 단속직원과 야생동물보호협의회 뱀 전문가가 동행했다. 현장은 차량 한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로 15분 정도 들어가야 했고, 주위에 인가도 없었다. 김씨는 496m²부지에 울타리를 쳐놓고 직접 뱀을 키우고 있었다. 김씨는 "뱀을 수백 마리 양식하고 있다"고 했다.

창고에는 뱀탕을 끓일 때 쓰는 큰 솥이, 부엌 옆에는 한약봉지마냥 뱀탕을 담는 포장지도 보였다. 김씨는 "고객이 오면 뱀탕을 끓여준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단속반원들도 "단지 식용이라는 점만 가지곤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김씨가 아산시청에 살무사와 쇠살무사, 까치살무사 등을 인공증식용(양식)으로 신청해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양식이 가능한 뱀은 모두 4종이다. 아산시청 및 환경부 관계자는 "인공증식으로 허가 받은 뱀은 어떻게 사용하든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즉 김씨가 허가 받은 세 종류의 뱀은 식용으로 끓여 팔아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김씨가 기자에게 귀띔한, 그러나 허가를 받지 않은 구렁이는 어떨까. 구렁이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법 상 사육을 할 수 없지만 힘이 세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뱀탕 애호가들이 불법을 감수하고 많이들 찾는다. 단속직원들도 "구렁이를 뱀탕에 쓰고 있다면 엄연한 불법이니 발견이 되면 경찰에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김씨가 구렁이를 보유하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뱀 양식장은 햇빛을 피하고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1.5m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슬레이트를 여러 장 깔아놓은 구조로 돼있다. 뱀들은 깊은 구덩이 속 슬레이트 사이에 숨어 있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단속직원들은 "놈들이 다 독사인데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하면 어쩌냐"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느긋하게 뒷짐을 쥐고 있었다.

야생동물보호협의회 이덕영씨가 "구렁이는 자루 안에 묶어둬도 며칠은 살고, 산 어딘가에 따로 키울 수 있다"고 귀띔했지만 소용 없었다. 사법경찰권도 없는 단속반원들이 양식장을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에게 "전화로는 구렁이도 판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지만 김씨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이날 단속반원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단속반원들은 환경부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5일 '뱀탕 아직도 드시나요?'란 보도자료를 내고 "뱀은 함부로 잡아서도, 먹어서도 안 되는 야생동물"이라는 점만 강조했을 뿐, 실질적인 단속방법 등에 대한 제시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산시청 관계자는 "사실 지난 2년간 불법 뱀 포획이나 불법 뱀탕집 단속에 나섰지만 확실한 제보나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허탕치기 일쑤였다"고 털어놓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업무를 맡는 직원들이 서무나 회계 등을 함께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2~3일 잠복하며 범죄현장을 지켜보기도 힘들다. 한 담당직원은 "그 흔한 신고 포상금제라도 있으면 모를까, 지자체 예산으론 그것도 버거워 솔직히 손을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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