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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51> 작은 일에서 큰 교훈 얻은 홍성교도소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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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51> 작은 일에서 큰 교훈 얻은 홍성교도소 생활

입력
2010.07.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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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평생 사는 동안 1년 정도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의 홍성교도소 생활 1년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사방 담당의 이름이며 사소한 일들까지 다 기억나는 것을 보면 홍성교도소 생활은 나에게 무척 의미 있는 생활이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곳에 있는 동안 엄청난 양의 비밀문건을 써 보내 민주화 운동에 작은 보탬이라도 준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 밖에도 교훈과 기쁨을 얻은 일이 대단히 많았다. 그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먼저 홍성교도소에 있는 동안 운동을 참 신나게 했다. 산 밑에 있어 공기가 좋은 데다 운동장이 넓어 속이 확 트였다. 20여분 동안 운동장을 열 바퀴쯤 돌고 30분 정도 테니스를 쳤다. 운동하는 재미도 컸지만 운동 후 목욕할 때의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더운 물이 제공되었으나 지하수로 목욕했다. 여름철엔 시원하고 겨울철엔 따뜻한 물이 솟구쳐 올라 그 어떤 호화 목욕탕보다 나았다.

나는 평소에도 운동과 건강에 관한 내 나름의 철학을 정립하고 있었다. 특히 홍성교도소에 있는 동안 운동의 철학이면서 건강의 철학인 '몸의 철학'을 제대로 정립할 수 있었다. 사람의 몸도 우주의 한 부분이자 소우주인 만큼 우주의 섭리 내지 자연의 법칙대로 몸이 작동할 수 있게 해야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몸의 철학과 더불어 노동의 철학과 사랑의 철학을 정립해서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바, 몸의 철학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고, 노동의 철학은 자신의 활동이 자아실현의 과정이 되게 해서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며, 사랑의 철학은 나와 상대방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되게 해서 사랑이 주는 마음의 평화를 누려서 행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다. 몸의 철학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존재의 철학'이고, 노동의 철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한 '의지의 철학'이며, 사랑의 철학은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말하는 '관계의 철학'이다.

나는 홍성교도소에 있는 동안 몸의 철학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이 세 가지 삶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는데, 내 인생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홍성교도소는 직원들이 순박한 데다 염창근 소장이 재소자들을 잘 보살피는 분이어서 재소자들이 많은 복지혜택을 누렸다. 그 가운데 '재소자와 가족 합동 체육대회'는 홍성교도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재소자와 가족이 온 몸으로 껴안으며 함께 달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었으니, 이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평소에는 면회를 하더라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손 한번 잡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날은 7시간 넘게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런 기쁨이 어디에 또 있겠나. 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제의 체육대회에서 재소자와 그 가족들이 맛본 기쁨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통곡 아닌 것, 슬픔 아닌 것, 눈물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슬픔 속의 기쁨이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고, 이 기쁨은 고스란히 깨달음의, 거듭 태어남의, 재기의, 화합의 터전이 될 거요. ……이날 음식은 사랑의 전달체 바로 그것이었으니, 우리는 음식을 먹기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의 사랑과 정성과 눈물과 한숨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런데 교도소 당국자들이 이런 기회를 제공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재소자와 가족이 이런 식으로 만나다 보면 보안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담배나 라이터, 볼펜 등 부정물품을 주고받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교도소 당국의 특별한 배려를 생각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야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마련인 게 세상일이다. 이런 점에서 소장이나 보안과장 등은 옷 벗을 각오까지 했을 것이 틀림없다. 대단한 분들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체육대회가 끝나고서 보안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이 없었다. 교도소 당국의 특별한 혜택에 재소자들도 특별한 보은을 한 것 같았다. 재소자의 한 사람으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충남 예산의 향천사라는 절에서 위문공연을 왔는데, 나는 이 위문공연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무엇보다 청순하고 발랄하며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노래와 춤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죽은' 공연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한 마디로 살아서 펄떡이는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상당수 재소자들도 함께 어울린 공연마당은 그야말로 멋진 축제였다. 솔직히 말해서 돈 한푼 안 내고 공짜로 보는 위문공연, 그까짓 것 볼 게 뭐 있겠나 싶었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돈 한푼 받지 않고 오히려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 사랑과 기쁨을 나누고자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공연이라 더 알차고 멋졌다.

이날 공연도 좋았지만 향천사 주지스님의 설법은 더 좋았다. 설법을 청했는데, 하실 말씀이 없다더니 "나는 교도소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푹 놓이고 내 집에 온 것 같군요. 이런 걸 보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교도소에 와 있어야 할 사람이 운이 좋아 절에서 살고 있는 것 같네요. 운이 다해 이곳에 오면 잘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씀했다. '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는다'는 보살의 도, 그리고 중생과 부처를 분별하지 않는 부처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말씀이구나 싶었다. 스스로 낮춤으로써 재소자들로 하여금 자성토록 하고, 재소자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었다.

그 뒤부터 나는 위문공연 단골손님이 되었는데, 공연도 볼만했지만 떡 한 봉지, 과일 한두 개 얻어먹는 재미도 여간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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