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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53)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 된 교도소 쪽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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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53)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 된 교도소 쪽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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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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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의 대통령 취임 특사 때 석방되었다면 운동권세력을 결집하여 정당을 건설하려 했으나 석방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정당건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기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은 데다 6월민주항쟁으로 ‘6.29항복선언’까지 받아내고서도 징역을 살고 있으니 창피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 있어 금방 평상심으로 돌아가 반독재투쟁에 열정을 쏟았다.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직후에도 많은 비밀문건을 내보내 반독재투쟁을 독려했지만, 특히 노태우정권이 출범한 바로 다음날인 2월 26일 ‘정권내 갈등과 향후 전망’이란 문건을 통해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야당 후보의 분열로 민주화를 놓친 허탈감 때문에 침체되어 있으나 머지않아 노테우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산되면 반독재투쟁 의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전두환정권의 숙명적 업보인 광주학살 문제를 제기해서 노태우정권과 전두환세력 사이의 갈등을 부추길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4.26총선 이후의 투쟁방향’, ‘광주·5공투쟁이 중요하다’ 등의 비밀문건을 통해 광주학살과 5공비리의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태우정권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화를 달성해가야 함도 밝혔다.

그리고 당시의 정세에서 재야운동권이 통일운동에 주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문건을 많이 내보냈다. 87년의 ‘6.29항복선언’ 후에도 마치 민주화는 다 이뤄진 듯이 통일운동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었으나 노태우정권 출범 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해졌다. 1988년 7월에는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민주단체 협의회’(조통협)란 단체를 만들어 통일운동에 주력할 뜻을 밝히기까지 했다. 특히 학생들의 통일운동 지향이 더 강했다. 그래서 나는 ‘조통협의 결성과 최근 통일운동에 대한 검토’, ‘빗나간 학생운동의 통일투쟁’, ‘남북 올림픽공동개체 주장의 오류’ 등의 문건을 통해 재야운동권과 학생운동권이 통일투쟁에 주력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지적했다. 민주화의 관건인 광주·5공투쟁을 약화시키기 때문에도 옳지 않지만 운동권이 좌경·용공세력으로 비치기 때문에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운동권이 통일투쟁으로 나가는 것은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통일투쟁으로 나간 것은 기본적으로 민족통일문제가 중요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운동권의 비주체성과 비과학성 때문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에 대한 맹목적 수용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었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 표명된 민족통일의 3대원칙 곧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은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그대로 따른 것인 데다 사상, 이념, 제도를 초월해 민족을 통일해야 한다는 민족대단결주의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비과학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해 어떻게 민족통일을 이룰 수 있으며, 설사 그렇게 해서 민족통일을 이룬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족통일은 그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을 변화시킬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한과 북한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민족통일이라면 의미가 없다. 더욱이 7.4남북공동성명은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박정희가 1인 영구집권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헌법의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직을 신설해서 김일성독재체제를 강화했고,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는 유신헌법의 제정을 통해 박정희독재체제를 강화했다. 그런데도 남한 운동권이 7.4남북공동성명을 민족통일을 위한 큰 이정표라도 되는 양 받들어 모시는 것은 이것이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내놓은 조국통일 3대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처럼 나는 7.4남북공동성명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지적하면서 운동권이 통일투쟁에 주력하는 것은 민족통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광주·5공투쟁을 약화시켜 민주화에 역행할 뿐임을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비주체적이고도 비과학적인 민족통일운동이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강화되고 있으니, 이것은 민족적 비극이기 이전에 민족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인민을 아사지경으로 내모는 사상과 이념과 정권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면서 민족통일운동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교도소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민주화를 위한 일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요함이 지나쳤던 것 같다. 이왕 갇혀 있는 처지라면 당면투쟁에 몰두하기보다 책이나 열심히 읽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그 덕분에 내 소지품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쪽지 글’ 한 뭉치를 소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쓴 이 쪽지 글들을 보노라면 그때의 집념과 열정이 생각나 엄청난 자긍심을 갖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내가 하루도 쉬지 않고 비밀문건을 작성해서 접견 온 아내에게 주면 아내는 그것을 그대로 남에게 주지 않고 일일이 타이핑해서 주었다. 만약 그 문건이 수사기관에 적발되어 출처를 추궁당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타이핑해서 줄 경우 설사 그 문건이 나한테서 나온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접견 시에 내가 말한 것을 아내가 메모했다가 그것에 기초해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 둘 데리고 살림하랴, 학교에 가서 학생들 가르치랴, 접견 오랴, 문건 받아다가 타이핑해서 민통련 사람 만나 전하랴, 매일 한통씩 편지 쓰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일을 하느라 고생 꽤나 했겠다 싶어 안쓰러울 만도 했으나 그런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내가 몰인정해서였기보다 아내에 대한 내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안하다는 말을 넘어 죄스럽다는 말도 부족하게 생겼으니 나이 탓인지 업보 탓인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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