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집이 다 탈 때까지 불구경만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화재를 당한 집주인이 미리 지불해야 하는 소방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진화를 거부한 이유다. 이를 두고 미국사회에 뿌리깊은 '자유방임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비난과 사회체계 '무임승차' 근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테네시주 오비언 카운티 주민 진 크래닉은 손자가 집 근처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집으로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보고 급히 911에 연락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서비스)명단에 없다"는 냉정한 응답뿐이었다.
소방서가 없는 이 지역 주민들은 20년 전부터 인근 사우스풀턴시에 주택당 매년 75달러(약 8만4,000원)의 소방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받아왔는데, 크래닉은 올해 납부를 깜빡 잊었다. 그 동안 꼬박꼬박 요금을 내왔다며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끝내 크래닉은 전재산과 개 3마리, 고양이 1마리를 잃었다.
소방관이 현장에 출동하기는 했으나 소방요금을 낸 옆집의 신고 때문이었다. 크레닉은 "제발 불을 꺼달라. 500달러를 내겠다"고 애원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5일 미 abc방송이 전했다. 소방관들은 불이 활활 타는 것을 구경하면서 다만 불길이 옆집으로 번지지 않도록 마주한 담에만 물을 뿌려 크래닉을 더 분노하게 했다.
졸지에 집을 잃은 크래닉 가족은 트레일러에서 생활하고 있다. 분개한 크래닉의 아들은 소방서를 찾아가 항의하다 폭력 혐의로 기소돼 최근 5,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는 등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엄연한 선불 서비스여서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현장납부를 허용하면 불 난 집만 요금을 납부할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를 두고 진보성향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급한 환자를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며 통렬하게 비난했다고 애틀란틱 와이어가 전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 글렌 벡은 사람들이 크래닉을 동정해 이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만 접근한다며 "요금을 안 낸 사람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소방서는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며 반박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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