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숨은 월드 베스트 기업을 찾아서] <1> 선박 객실 절반은 우리 제품 '비아이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숨은 월드 베스트 기업을 찾아서] <1> 선박 객실 절반은 우리 제품 '비아이피'

입력
2010.12.26 12:05
0 0

32년간 한 우물… 특급호텔 같은 선실 만들어 美항모에도 납품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이 2003년 53.1%에서 2008년 38.8%로 하락,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초일류 글로벌 기업도 중요하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이 많아야 한국 경제의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잘 모르는 세계일류상품들을 수출하는 크고 작은 기업들의 활약은 각별하다. 새해 한국 경제가 더욱 선전하길 희망하며 우리 경제의 숨은 강자인 '월드베스트'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지난 23일 경남 양산시에 자리잡은 선박 기자재 전문 회사 비아이피㈜의 생산공장. 사무실 3층에 꾸며진 모델하우스로 들어서니 20~30㎡ 규모의 방 안에 침대와 가구, 욕실이 아기자기하게 모두 구비돼 있었다. 선박용으로 보이는 동그란 창문만 없다면 호텔인지, 선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 특히 테라스가 설치된 크루즈용 객실은 특급 호텔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이렇게 꾸며진 객실은 공장에서 조립된 그대로 새로 건조되는 여객선에 바로 설치하면 된다. 비아이피㈜는 이미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1위(30.3%)로 지난달 지식경제부가 선정한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됐다.

비아이피㈜가 속한 비엔그룹의 하현희 홍보기획팀장은 "해상거주용 객실 유니트는 화장실과 가구, 배관, 전기시설 등을 일체화한 선박인테리어의 꽃"이라며 "이미 세계일류 상품에 선정돼 있던 해상거주용 벽체ㆍ천정패널, 욕실유니트와 함께 이룬 또 한번의 쾌거"라고 말했다.

국내 선박 기자재 전문 중소기업이 32년 만에 이처럼 선박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회사 관계자들은 한 우물 파기와 끊임없는 연구 및 도전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비아이피㈜는 처음 설립 후 오로지 선박 인테리어 분야에만 공을 들이며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회사 관계자는 객실 내부의 벽과 천장을 보여주며 벽면의 오돌토돌한 무늬에 대해 설명했다. 언뜻 보면 일반 벽지의 장식 정도로 보이는 무늬지만 철판의 두께를 줄이고, 강도를 높이는 비밀이 숨어 있다. 선박 내장재는 가볍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핵심인데, 이를 위해 오돌토돌 무늬를 넣어 기준 강도를 강화시키면서 두께는 0.5mm로 줄였다는 것. 보통 0.6~0.7mm 수준인 다른 회사의 벽면보다 더 가볍지만 더 강하다.

또 해상 거주공간 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방화성과 방음성에도 중점을 뒀다. 초고강도의 방염 소재를 사용한 방화판넬은 섭씨 1,000도에도 1시간 동안 타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여기에 얇은 한 장의 판넬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인 51데시벨까지도 차단이 가능하다. 이런 우수성 덕분에 현재 이 회사의 제품은 납품조건이 까다로운 미국 국방성의 조달자재로도 등록되어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군의 항공모함, 구축함 등에 사용되는 자재는 거의 미국 제품이지만 몇 안 되는 외국 제품 중에 국산 선박 기자재로는 유일하게 납품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의 요구에 맞게 제품을 '맞춤생산'을 해온 노하우도 성공비결 중 하나다. 두 개의 철판 사이에 암면이라는 내장재를 채워 넣어 객실 벽체를 만드는 공정이 있는데 고객의 요구가 다양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생산을 하고 있다는 것. 김주혁 품질경영팀 차장은 "대량 생산된 자재를 갖다 다시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하는 경쟁 기업들과 달리 일부 수작업을 통해 고객의 요구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국내시장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것도 강점이다. 해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조선 기자재의 경우 제품의 품질과 기술력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각 국은 나름대로 선박 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과한 제품만을 선박에 허용하고 있다. 비아이피(주)는 나라마다 다른 이 규정을 통과한 우수한 제품을 국내 업체 중 가장 많이 갖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선박용 방화판넬 세계시장점유율이 40.1%, 조립식 욕실 시장점유율이 49.5%나 된다"며 "시장 점유율로 추산하면 세계 오대양을 누비는 선박과 해상 구조물에 사용된 공간의 절반 가까이는 비아이피㈜가 생산한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양산=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세계일류상품

'세계일류상품'은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안에 들거나 5년 안에 진입 가능한 제품과 그 제조 회사를 선정, 집중 지원하는 지식경제부의 사업이다. 몇몇 품목에 집중돼 있는 우리 수출 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수출 상품도 고급화해 국가 이미지도 한 차원 높여 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챔피언'을 세계적인 강소 기업으로 키우려는 의도가 강하다.

세계일류상품에 뽑히면 정부는 '세계일류한국상품전'등 해외 전시회 참가를 비롯, 해외마케팅을 지원한다. KOTRA의 해외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활용, 신시장 개척 및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체계 등도 돕고 있다. 또 KOTRA의 마케팅전문가를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선정, 유망 중소기업들의 마케팅을 보완하고 있다. 선정기업으로서는 일류상품 로고를 달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인정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이라는 상징성도 얻게 된다. K-sure(한국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 한도 우대, 기술 개발 지원, 병역지정업체 선정 추천 시 가점 부여 등 다양한 혜택도 더해진다.

그러나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매년 자격을 따지는 만큼 조건을 계속 충족하지 못하면 심의에서 탈락한다. 특히 지난해까지는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면 됐지만 올해부터는 '세계 시장 점유율 5% 이상'이란 조건까지 추가되며 69개 품목과 72개 회사가 탈락의 쓴 잔을 마셨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01년 120개였던 세계일류상품은 현재 376개로 늘었는데, 세계일류상품의 성과 역시 늘어난 상품 수만큼이나 커지고 있다. 2005~2009년 전체 수출 증가율은 연 평균 6.3%에 그친 반면 세계일류상품의 수출 증가율은 10.8%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액 중 세계일류상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40.8%에서 48.1%(2009년)로 증가했다. 493개 세계일류상품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수출액도 2005년 1,159억에서 지난해 1,748억 달러로 늘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박동헌 비아이피 대표 "미친 듯이 노력하다 보니 조선 기자재 전문그룹으로 컸어요"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는 법이죠. 꿈을 향해 1년이든 10년이든 미친 듯이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박동헌(사진) 비아이피㈜ 대표는 그 동안의 성공에 대해 '미친 듯이 노력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1970~80년대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기자재는 대부분 수입제품이었다"며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조선업계의 분위기, 국산 제품에 대한 국내 시장의 싸늘한 반응을 뚫고 한 계단씩 오르며 시장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에는 배 한 척을 지어도 대부분 기자재가 외국산이어서 수주 받은 자금의 상당 부분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갔다. 박 대표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선박용 방화 판넬 제조업에 뛰어든 조성제 비엔그룹 회장(당시 비아이피㈜ 대표)의 제안으로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학교 선배였던 조 회장의 발탁으로 대기업을 거절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조 회장이) 중소기업에 와서 함께 회사를 키워보자고 했다"며 "그때 불현듯 소의 꼬리가 되기 보단 닭의 머리가 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비아이피㈜는 32년 만에 비엔그룹이라는 조선 기자재 분야 전문 그룹으로 성장했고, 현재 연간 매출액 5,000억원의 중견 기업이 됐다. 이제 비아이피(주)는 세계 최고의 종합 선박 인테리어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마음 속에는 이미 좀 더 다른 목표가 생겼다.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운 뒤 하나씩 목표를 달성해 가야죠. 그렇다고 회사가 무조건 앞만 보고 혼자 내달려서도 안 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오래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죠. 앞으로는 눈앞에 있는 작은 이익보다는 더 큰 것을 볼 생각입니다."그의 새해 각오이다.

양산=강희경기자 kstar@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