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농구 감독들은 왜 정장만 고집할까
알림

농구 감독들은 왜 정장만 고집할까

입력
2011.01.04 13:11
0 0

전창진(48) 부산 KT 감독은 2010~11시즌 프로농구 개막 직전만 해도 '도인(道人)'이었다. 수염이 코밑과 턱 그리고 귀밑을 덮고 있었다. 전 감독은 그러나 개막 전날 말끔하게 면도를 했다.

또 평소에는 캐주얼을 즐기는 전 감독이지만 공식경기에는 반드시 양복 차림으로 나온다. 전 감독뿐 아니라 적어도 프로농구 감독이라면 '농구장=정장차림'은 기본 공식이다. 규정에는 없지만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지 않는 것도 '불문율'이다.

프로농구 대회요강 제22조에는 '공식경기 중 감독과 코치는 정장(와이셔츠에 넥타이 또는 터틀넥 스웨터)이나 한복을 입는다'고 명시돼 있다. 다시 말하면 감독은 경기 중에 양복이 아닌 한복을 입어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 한복을 입고 농구장에 나오는 감독은 없다. 몇몇 구단이 명절 등 특별한 날에 감독들에게 '한복 팬 서비스'를 권유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성사된 적은 없다.

점퍼 입고 담배 문 채 작전 지시했던 70년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점퍼에 면바지가 대세였다. 일부는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입기도 했다. 80년대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자리잡았던 농구대잔치 시절에도 감독들은 주로 그런 스타일이었다.

삼성에서 선수를 거쳐 프런트로 재직하고 있는 이성훈 사무국장은 "70년대 후반만 해도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담배 물고 작전지시를 하는 감독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양복의 효시는 방열, 보편화는 프로 이후

실업 현대와 기아자동차에서 감독을 지냈던 방열(70) 감독(현 건동대 총장)은 한국스포츠에서 '양복의 효시'로 불린다. 그는 1978년 초 공식경기에서 점퍼가 아닌 정장차림으로 코트에 섰던 것으로 많은 농구인들은 회고한다.

97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감독들의 '양복 패션'은 보편화됐다. 대회요강에도 나와 있듯이 감독들은 한복 아니면 양복(정장)을 입어야 한다. 프로농구가 탄생한 지 10년이 훨씬 지나면서 감독들의 패션은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체격이 좋은 덕분에 대충 입어도 폼이 난다. 안준호(188㎝ 85㎏) 삼성 감독은 '안 간지(간지는 일본어로 느낌이 좋다는 뜻)'로 통한다.

배지는 기본, 넥타이는 구단 상징색깔

정장차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넥타이다. 감독들은 개막전, 플레이오프 등 중요한 경기 때는 구단의 상징색깔과 같은 넥타이를 주로 맨다. 강동희 동부 감독은 녹색, 안준호 삼성 감독은 파란색, 강을준 LG 감독은 붉은색 넥타이가 주를 이룬다.

감독들은 양복 상의 왼쪽 컬러에 그룹 배지를 액세서리로 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허재 KCC 감독은 'KCC맨', 신선우 SK 감독은 'SK맨'이다.

야구는 유니폼, 축구는 제각각

야구 감독들은 '무조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규정상 경기 중에는 유니폼을 입은 감독, 코치, 선수, 심판 등을 제외한 사람은 그라운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초창기만 해도 감독 겸 선수가 많았다. 유니폼이 아닌 다른 복장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에 비하면 축구는 상당히 자유롭다. 딱히 복장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농구와 함께 겨울스포츠의 양대산맥으로 자리한 배구에서도 감독들은 정장 차림으로 코트에 선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 경기 끝나면 땀범벅…중저가 양복으로 버티며 넥타이로 패션 승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했다. 프로농구 감독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감독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표출하기 위해 코트에 나서기 직전까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감독들은 대체로 양복 7, 8벌, 드레스셔츠 20여 개를 갖고 있다. 보통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수다. 감독들은 대신 넥타이로 '승부'를 건다. 평균은 30개, 최대 60개에 이른다.

대표적인 '멋쟁이'는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 원색부터 체크무늬까지 각양각색의 넥타이를 보유한 이 감독은 매 경기 다채로운 패션으로 멋을 낸다. 이 감독의 패션 '롤 모델'은 김동광 프로농구연맹(KBL) 경기이사다. '멋쟁이'로 통했던 김 이사는 지금도 30여 벌의 정장과 200개가 넘는 넥타이를 장롱에 비치해 두고 있다.

양복을 구입하는 방법도 감독마다 다르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나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 등 체구가 '아담한' 감독들은 기성복을 애용한다.

하지만 안준호 삼성 감독이나 전창진 KT 감독 같은 거구들은 맞춤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전 감독은 10년째 서울 압구정동 모 양장점에서 양복을 맞춘다. KT 관계자는 "전 감독님은 패션 감각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양복부터 넥타이까지 직접 챙긴다"고 귀띔했다.

감독들이 입는 양복 가격은 50만원 안팎.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온통 땀 범벅이 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중저가 양복'으로 버틴다. 한두 벌밖에 안 되는 수입 원단의 고가 양복은 시상식이나 공식행사 때 입기 위해 아껴둔다.

감독들의 양복, 드레스셔츠, 넥타이 등은 구단 매니저가 챙긴다. 특히 원정경기 때는 숙소 근처 세탁소에 맡겼다가 경기장에 나가기 전 찾아와야 한다. 이성훈 삼성 사무국장은 "요즘에는 감독, 코치뿐 아니라 매니저들도 정장을 하기 때문에 양복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김종석기자 lef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