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결정은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청와대측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나라당 지도부의 결정이 보고된 것은 언론 발표 5분 전이었다.
당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주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원희룡 사무총장은 청와대 정무라인과 접촉, 정 후보자의 거취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당내 여론을 전달하는 자리였고, 청와대측은 "일단 청문회를 지켜보자"고 반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말에 여론을 수렴한 안 대표는 10일 새벽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정 후보자 사퇴 촉구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이어 안 대표는 오전 9시 최고위원회의를 앞두고 원 사무총장, 친이계 최고위원들과 사전 협의를 거쳤다.
이어 열린 최고위원회의. 마침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이 "대통령 비서 출신을 감사원장에 임명하는 게 정당하고 헌법정신에 과연 부합하느냐"며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비공개회의에 들어간 뒤 안 대표는 최고위원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다시 밟았다. 중국 출장중인 김무성 원내대표에게도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다.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서 "지체할수록 상처가 커진다"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정 후보자 엄호 발언은 없었다. 회의 도중 "청와대와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을 뿐이다. 정 후보자 사퇴 촉구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단 20분.
회의가 끝난 직후인 9시50분께 안 대표와 원 사무총장은 각각 청와대측의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 등에게 당의 결정을 통보했다. 청와대측의 첫 반응은 불쾌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당이 이제 제 갈길 가겠다는 얘기냐"는 고성 섞인 항의에 이어 격론이 오갔다고 한다. 이 대통령에게 당의 결정 내용이 보고된 시각은 10시20분께. 이후 안형환 대변인이 기자실로 내려와 "정 후보자가 감사원장으로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사퇴 촉구를 공식화했다.
이 정부 들어 여당이 청와대의 결정에 대해, 특히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와 관련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여당 의원들이 정 후보자 내정을 둘러싼 최근의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친박계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었다. 한 초선 의원은 "정치 방학을 맞아 지역구에 내려간 의원들이 민심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었고, 때문에 부정적 여론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한 꺼풀 더 들어가보면 이번 사태는 총선을 1년여 앞둔 여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봉합과 갈등의 양상이 반복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당청 갈등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당청 갈등에 대해 "이재오 장관 등 친이계 실세 의원들과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파워 게임 측면도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