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중계를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 "하일성씨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하일성씨는 어느 지역 출신입니까?"
부산이나 대구에 가면 "고향이 어딘교?" 광주에 가면 "하일성씨는 어떤 팀을 응원한당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대전 사람들은 "고향이 워디세유?"라고 묻는다.
나는 서울이 고향이다.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 관철동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내가 고향을 서울이라고 말하면 상당히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와 고향이 같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게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 고향 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해설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프로야구의 고향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역연고를 근간으로 출범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철저한 애향심을 바탕으로 프로야구가 운영되고 흥행된다.
미국 다음으로 프로야구를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도 자기 고향 구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했지 미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프로야구가 탄생(1982년)하기 전에는 고교야구가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고교야구는 애향심에 애교심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대회 기간 동안 표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구장 근처는 표를 사려는 인파로 수백 미터 줄이 이어졌다. 암표상은 표가 없어서 못 팔았다.
나는 고교야구와 프로야구 중계를 해오면서 지방에 따라 연고구단을 응원하는 방식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방식도 세월에 따라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로야구팀의 응원과 관심에 관한 한 광주 팬들이 최고인 것 같다. 특히 과거 해태 시절에는 전국의 어느 구장에 가더라도 해태 팬들로 넘쳐났다. 해태가 한국시리즈를 9번이나 제패한 것이 큰 몫을 했다.
해태의 경기가 중계되지 않는 날 방송국에는 팬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졌고, 직원들은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다른 팀의 경기는 중계하면서 왜 해태만 안 하느냐"는 항의가 대부분이었다. 전날 해태 경기를 중계했기 때문에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어찌보면 도가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기 고향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도 해태 경기를 중계할 때는 더 신경이 쓰였다. '부실 해설'을 했다가는 금세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 해태 팬들이지만 대구구장에서는 대체로 잠잠했다. 전국의 모든 구장을 홈처럼 만드는 해태 팬들이지만 대구에서는 소규모 응원에 만족하거나 그마저도 포기했다.
돌아보면 해태 팬들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해태가 지거나 실망스러운 경기를 하면 아우성이었지만, 하도 우승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매너도 갈수록 좋아졌다. 특히 2001년 KIA로 바뀐 뒤로는 열성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응원 방식이나 태도는 한결 성숙해졌다.
삼성의 본거지인 대구ㆍ경북은 야구에 관한 한 자부심이 정말 대단한 곳이다. 고교야구 전성기 때 경북고 대구상고 대구고 등 이 지역 고교팀들이 화려한 역사를 일궜기 때문일 것이다. 팬들도 늘 화끈한 응원으로 삼성의 승리를 기원한다.
하지만 삼성이 실력으로는 늘 우승권이지만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탓에 팬들의 울분이 폭발할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던 적도 있다.
야구의 도시는 역시 부산이다. 오죽하면 부산을 구도(球都), 야구의 수도라고 하겠는가. 부산 관중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분석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롯데가 이겨야 기분은 좋지만 비교적 승부에는 관대하다.
다만 롯데가 졸전을 펼치거나 수준 이하의 경기를 보이면 가차없이 매를 가한다. 소리도 지르고 원성도 보낸다. 롯데의 성적이 하락할 경우 사직구장의 관중은 급격히 감소한다. 롯데에 대한 불만을 부산 사람들은 그렇게 표하는 것이다.
야구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고장은 대전, 충청지역인 것 같다. 대전 팬들은 프로야구 초기에는 승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화가 몇 차례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뒤로는 이따금 과감한 반응도 서슴지 않았다. 가슴에 멍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은 부산과는 또 다른 야구 도시다. 해방 이후 국내 최강의 동산고를 앞세워 가장 먼저 야구에 눈 뜬 도시답게, 인구수에 비해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대방의 수준 높은 플레이에 가장 많은 박수를 보내는 곳이 인천이다.
LG와 두산은 서울 관중을 양분하고 있다. 두산은 남자와 장년층, LG는 여자와 청년층이 주로 좋아한다. 물론 요즘에는 층이 더 넓어져 그런 구분이 의미 없을 정도가 됐다. 서?팬들이라고 응원하는 팀이 지길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잠실구장은 전국 여러 구장 가운데 야구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가장 확실하게 자리잡은 곳이다.
지역에 따라 팬들의 기질도 다르고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팀 성적에 따라 관중의 태도가 달라지며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관중의 애정도 달라진다. 어느 팀 팬이든 선수들의 나태한 모습에 관대하지는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야구도 잘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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