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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7> 참 특이한 캐릭터인 하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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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7> 참 특이한 캐릭터인 하일성

입력
2011.02.0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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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내 혈액형을 정확히 맞힌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활달하고 낙천적인 내가 으레 O형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하 위원님은 전형적인 O형이세요"라고 단언하듯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O형이 아닌 B형이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겉보기와 달리 사람 만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아는 체 해가면서 떠드는 것도 적성에 안 맞는다. 그저 조용히 혼자 앉아서 책이나 신문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하일성이다.

방송에 나가서 말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직업일 뿐이다. 야구 해설자인 내가 방송에서 과묵할 수는 없지 않나. 다행히 유머감각이나 말재주가 있어 분위기는 어느 정도 맞추는 편이지만 근본적인 내 성격은 외향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하일성은 좀 덜렁댄다" "하일성은 일을 대충대충 한다" "하일성은 실수가 많을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나는 매사에 꼼꼼하고 예민하다. 또 매우 감상적이다.

나는 여자 같은 섬세함이나 꼼꼼함을 갖추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대범하다. 매우 화끈하면서도 작은 일에 신경도 많이 쓴다. 씩씩하면서도 신중하고 진지하다. 여자 같은 꼼꼼함 때문일까. 나는 이따금 꿈에서 '여자 하일성'으로 등장한다. 나타날 때마다 다른 여자이지만 공통점은 대단히 날씬하고 예쁜 외모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꿈에서 깨고 나면 곧장 거울 앞으로 달려간다.

나는 내가 벌여놓은 일은 절대 눈감고 지나치지 못한다. 또 다른 사람이 어질러놓은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참 특이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때로는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시골 출신 아니셨던가요'라는 질문이 묻어난다. 그만큼 내가 투박하고 촌스럽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내 고향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일성이다. 나는 하일성의 모든 면을 다 사랑한다. 이 나이에 세세하게 장단점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것은 하일성이 아닐 것이다. 예순 살이 넘도록 세상을 살면서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도박이고, 또 하나는 카바레 출입이다. 이 또한 믿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워낙 놀기를 좋아하고, 젊었을 때부터 사고도 많이 쳤던 하일성이지만 이 두 가지만은 정말 안 해봤다. 또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카바레에 가지 않은 것은 춤 자체가 싫다기보다 카바레의 분위기가 왠지 나랑은 안 맞기 때문이다. 카바레를 떠올리면 제비족이나 불륜 같은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춤 문화는 있다. 잔칫날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한데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게 우리의 춤 문화다. 그런데 카바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나는 아예 카바레 출입을 생각조차 안 해봤다.

도박을 안 하는 것은 주위에서 도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라는 친구가 도박판에서 하룻밤에 500만원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놈이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월급쟁이를 해봐서 잘 알지만 월급쟁이는 월급날 한 달의 대가를 보상받는다. 그 뿌듯함이란 말로 표현이 잘 안 된다. 그런데 그 노력의 대가를 하룻밤에 날려버린다는 게 말이 될까.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의 일이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부도를 맞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친구에게 소줏잔을 건네며 어깨를 두들겼다.

그런데 옆자리에 있던 26, 27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참으로 기가 막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트레이트 때문에 200만원을 날렸잖아. 그 자식이 작전 쓰는 것도 모르고 덤볐다가 한방에 다 잃었어." "그 녀석 수가 보통이 아니다. 저번에도 한번에 700만원을 땄잖아. 네가 당했어."

그때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인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라면을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을 땄던 임춘애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임춘애는 "우유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때 우리가 좀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겸손했다면 IMF의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나태했고 교만했다. 젊었을 때는 도둑질 빼고 다 해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일리 있는 얘기다.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반드시 가치관은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내면에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천지 차이가 된다. 도둑질 빼고 다 해보라는 말도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확고한 가치관 아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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