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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 불씨 당긴 열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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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 불씨 당긴 열사들

입력
2011.12.1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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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쉽게 오지 않는다. 부조리가 국민의 인내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 불만이 봇물처럼 임계점을 넘어서며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올 한해 중동의 수십 년 묵은 철권(鐵拳)을 여럿 갈아치운 재스민 혁명이 그랬다. 철권은 민주화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엄청난 희생자를 냈고, 무슬림은 그들의 죽음을 순교로 간주했다. 독재자 지네 알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축출로 이어진 튀니지 청년의 분신 1년을 맞은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죽음으로써 ‘아랍의 봄’의 물꼬를 텄던 주요 순교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튀니지가 재스민(튀니지의 나라꽃) 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은 27세 과일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이 결정적 계기였다. 대학 졸업 후 시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던 부아지지는 노점상 단속반원에게 구타당하고 뇌물을 줄 여력이 없는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몸에 불을 댕겼다. 그의 분신에 격노한 튀니지인의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다. 사후 유럽의회로부터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고 프랑스 파리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조성되는 등 재스민 혁명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29년 독재를 무너뜨린 이집트의 시위는 교사 아메드 바시오니(32)의 죽음과 함께 불붙었다. 바시오니는 1월말 시위에서 “우린 평화를 원한다. 나는 조국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일 뿐”이란 글을 페이스북에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후 시위대는 바시오니의 대형 초상화를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에 내걸고 그의 유지를 기리고 있다.

5,000명의 희생자를 낳은 시리아의 시위는 함자 알 카티브(13)라는 소년의 비극적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 함자는 4월말 가족과 함께 시위에 나갔다가 실종됐다. 한 달 후 온몸에 고문의 흔적과 함께 여러 발의 총알을 맞은 싸늘한 시신으로 부모 품에 돌아왔다. 시신의 모습이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확산됐다. 이후 함자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한 유혈진압의 상징으로 시리아인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리비아의 IT 엔지니어 무하마드 나부스(28)는 유일하게 살아서부터 민주화 시위 확산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나부스는 참혹한 시위현장 모습을 정부 통제를 받는 인터넷을 우회해 위성으로 직접 외부에 송출했다. 보도통제에 맞서 개인방송을 통해 벵가지 시위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던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개입으로 벵가지가 해방되기 불과 몇시간 전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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