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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적자!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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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적자! 생존

입력
2012.01.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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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適者)생존이라는 생물학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적자생존이란 생존경쟁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현상을 말한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스펜서라고 한다. 다윈이 에서 '자연선택'이라는 말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진화론을 설명하는 유명한 말로 군림해왔으나 지금은 그리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태계의 기본원리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원리가 아니라, 공생원리 또는 상부상조의 원리로 절대강자나 승자독식의 세계가 아니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자생존을 자연계 법칙이라고 당연히 이해해버린다면 대단한 오해라는 것이다. 이 적자생존이라는 말에서 유의할 점은, 강하고 우수한 능력의 생물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뜻이기보다는 단순히 환경에 잘 적응하여 잘 번식하는 생물이 살아남는다라는 점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먼저 길게 생물학 용어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살핀 이유는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말을 자신에게 주입,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뜻은 다르지만 회자되어 유명한 동음이자 적자생존이 저절로 맨 처음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문 적자가 아닌 우리말 적자는 무슨 대단한 글쓰기를 뜻한다기보다는 받아쓰기를 뜻하는 거다. 그때그때의 시공간에서 받아쓰기하기. 다른 사람의 말 받아쓰기, 책 속의 구절 베끼기, 떠오른 생각 메모하기 등의 받아쓰기하기. '적자'는 좀더 특별하고 의미롭고 재미있어서 기억할 만한 내용들을 놓치지 말고 짧게라도 적어두자는 다짐이고 강조다.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지 않으면 잊게 된다. 적으면 한번 더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틈틈이 나름으로 적는다면 자신의 상식을 만들고 개성을 쌓아 자기세계와 자기역사를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또 짐작이나 불확실함 속에서가 아니라 기록이 된 정확한 사실로부터 근거해 문제적인 일이나 감정을 비교적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지런히 찾아 적는 자는 결국 적합한 자, 적자가 되어 바람직하게 발전, 번식하여 생각 있는 자가 되고 살아남는 자가 된다는 이야기.

나는 이즈음 뭘 깜박깜박 잊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자신의 기억력을 과신할 수 없게 됐다. 메모 습관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이 '적자! 생존'이라는 말과 적자 실천이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로 떠올라 적기, 메모하기에 대한 가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보다 10년은 위인 선배시인이 함께 탄 지하철 칸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곤 하던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선배시인은 언제 어느 곳이든, 길을 걷다가도 누가 곁에 있어도 시가 될 이미지나 언어가 떠오르면 그걸 그냥 흘러가게 두지 않고 적어두는 일이 완전 생활습관이 되었단다. 그런 메모 속에서 버리는 것도 많지만 적잖은 시들이 태어난다고 한다. 그분은 메모하기라는 이익이 많은 훌륭한 습관을 재산처럼 가진 것이다. 메모란 그저 그런 것을 적는 게 아닌, 잊으면 안 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감동이든 혐오든 보다 치열하고 깊은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다.

메모도 표현수단의 하나다. 단어만의 암호 같은 나열일지라도 비밀히 표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가 세상의 일을 이루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메모를 일부러 멀리했다. 괜찮은 시상이 떠올라도 다 흘러가게 하고 마지막 남는 거만 건지리라 했다. 잊어먹으면 잊을 만하여서 잊은 것이니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이제금 이런 방식은 손해가 막심함을 알게 됐다. 새해에는 '적자! 생존'을 각인시켜 '시'라는 이익을 내는 습관을 쌓기를 희망해본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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