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회자돼 온 말이다. 금배지 달기가 워낙 어려워 때로는 체면과 품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이 16일 공개한 4ㆍ11 총선 공천 신청자 명단을 보면, 얼굴이 '두꺼워도 너무 심하게 두꺼운' 사람들이 눈에 띈다. 공직선거법 등 실정법을 위반했거나, 심각한 구설수에 오른 전력 등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 달라'는 압박을 받았음에도 꿋꿋하게 공천 신청서를 낸 인사들이다.
서울 강동갑에서 강동을로 지역구를 바꿔 공천 신청을 한 김충환 의원이 그런 경우다. 김 의원의 부인은 2009년 지역구 주민들에게 설 선물로 300만원어치의 멸치를 돌렸다가 5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선거법상 김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했지만, 이번에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김 의원은 '강동구청장 3선 경력'을 내세워 이웃 선거구인 강동을에 도전하는 '꼼수'를 썼다.
윤영(경남 거제) 의원의 부인은 2010년 6ㆍ2 지방선거 때 지역 내 출마 희망자들에게 공천 헌금 1억 2,000만원을 받아 징역 10월형을 받았다. 윤 의원은 '직계존비속이 선거법을 위반해도 국회의원 선거 때 발생한 일이 아니면 의원직이 유지된다'는 조항 때문에 가까스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 데 이어 이번에도 공천 신청을 했다.
18대 총선 때 경남 양산에서 당선됐던 허범도 전 의원은 2009년 6월 자신의 동생과 회계 책임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으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그는 이번에 양산에 다시 공천 신청을 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의원직을 잃었는데도 같은 지역에 다시 출마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옥매트 8,275만원어치를 빼돌려 다른 용도로 썼다는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된 윤석용(서울 강동을) 의원의 공천 신청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장광근(서울 동대문갑) 의원은 후원자들로부터 5,784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심에서 벌금 700만원 등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이 밖에 2006년 수해 때 골프를 쳤다가 제명된 뒤 최근 복당한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전 의원, 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A의원 등에게도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이들이 출마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비리 전력자 등을 철저히 걸러내겠다'고 벼르고 있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공천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공천 신청을 한 것만으로 새누리당의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아름답게 용퇴하는 데 써야 할 용기를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비아냥이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최문선 정치부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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