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중환자 그리스를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서 구해낼 2차 구제금융안이 최종 타결됐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방안을 놓고 13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한 끝에 21일 새벽(현지시간) 그리스에 2014년까지 1,300억유로(193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민간채권단은 자신들이 보유한 그리스 정부 채권 명목금액의 53.5% 이상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총부채가 1,000억유로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자까지 포함할 경우 민간채권단이 부담해야 할 손실 비율은 원리금의 7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합의에 따르면 그리스는 유로존으로부터 1,300억유로를 받는 대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를 현재의 160%에서 2020년까지 121% 이하로 낮춰야 한다. 이는 앞으로 그리스가 재정지출 축소와 증세를 병행하며 혹독한 긴축을 감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2차 구제금융 제공이 확정됨으로써 유럽 재정위기를 둘러싼 가장 취약한 불확실성이 제거된 것으로 평가된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총리는 “구제금융 협상안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고 그리스 다음 위기국가로 거론되는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도 “그리스, 시장, 유로존 전체를 위해 잘 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겨우 인공호흡기를 떼는 그리스의 경제가 정상궤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번 합의에 따라 돈을 자동적으로 받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스 정치권은 30억유로의 예산 삭감과 맞물린 30개 개혁법안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집권할 정당이 국민 반발을 이유로 긴축안을 철회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2차 구제금융이 사실상의 돌려막기에 불과해 결국엔 그리스가 밑 빠진 독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스가 받는 1,300억유로의 대부분은 기존 부채계약을 연장하거나 은행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데 쓰인다. 실제 그리스 경제에 직접 투입되는 금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리스 경제의 체력이 예상보다 더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빚을 내 들여온 돈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산업경쟁력을 높여야 추후 빚을 상환할 능력도 생기는데, 지난해 4분기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이미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 구제금융을 받고 부채를 탕감받더라도 빚을 갚을 여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결국 2020년 국가 채무비율 121% 목표를 달성하려면 유로존이 추가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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