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목욕탕 품은 면사무소… 등나무 그늘 씌운 공설운동장…
"건축가로서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건축가 고 정기용(1945~2011)의 생애 마지막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의 엔딩 크레딧엔 그의 철학이 오롯이 담겼다. 영화는 지난 3월에 개봉해 두 달 만에 관객수 3만명을 넘어서는 화제작이 되었다.
많은 건축가들이 도시의 랜드마크를 지으려 경쟁하는 사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임을 묵묵히 보여줬던 건축가. 화려한 외관보다는 공간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목한 윤리적 건축을 그는 평생에 걸쳐 추구했다. 영화 속에서 건축가 승효상씨는 고인에 대해 "건축가가 누구한테 봉사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분"이라고 말한다.
정기용의 건축 철학은 '감응의 건축'으로 집약된다. 잘 알려진 전북 무주군 안성면 주민을 위한 목욕탕, 주민이 뙤약볕을 피할 수 있게 한 무주 공설운동장의 등나무 스탠드, 학교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계원예술대학,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진행한 6곳의 기적의 도서관이 그 결실이다.
한국에 공공건축의 씨앗을 뿌리며 삶과 죽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관계를 고민했던 그는 과연 건축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10여년간 공공건축의 디딤돌을 쌓은 무주로 향했다. 넉넉히 둘러보려면 1박2일은 잡아야 했지만, 하루 일정으로 10여곳을 되도록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 여정엔 정기용의 유지를 받들어 기용건축을 이끌고 있는 김병옥 소장이 동행했다. 12일 늦봄의 따스한 햇살을 받은 무주의 자연은 녹음을 더해가고 있었다.
인간 정기용과 건축가 정기용
"30년간 정 선생님을 거의 매일 봐 왔지만 그런데도 그분은 늘 새로웠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변덕이 아닌 의외성이죠. 다른 동료들도 다들 동감하더군요. 수백 번은 족히 들었던 건축 강의도 단 한번도 똑같게 들린 적이 없었으니까요."
김병옥 소장의 회고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도 그 같은 면면은 드러난다. 출장을 다녀오던 길 기용건축 식구들을 단골 음식점으로 불러내는가 하면, 햇살 좋은 날엔 예정에 없던 피크닉을 제안하기도 했다. 영면하기 불과 며칠 전, 그는 기용건축 식구들과 자연이 보고 싶다며 갑작스레 호출했다. 김 소장은 경주에서 급히 서울로 돌아와 병상에 누운 채 구급차를 타고 온 그를 만났다. 영화 촬영을 위해 1년간 곁에서 고인을 지켜본 정재은 감독은 그 모습을 '정기용스럽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3월 그는 경기도 구리 아치울에서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정 감독이 아이폰으로 급히 촬영한 이 장면은 인간 정기용을 응축해 보여준다. 그는 유머러스하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영화 속, 무주 공공건축물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것에 노여워하던 모습이 김 소장이 그간 봐온 가장 심각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독가에 기억력도 비상하셨지만 무엇보다 낙천적이고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병세가 심각한데도 당신이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2005년 대장암 판정과 투병 중에도 후학 양성과 전시로 분주했던 그다. 입원한 동안에도 병실 벽에 설계도를 붙여놓고 일했다. 고통스럽다던 항암치료를 받고도 오후엔 의연하게 회사로 출근했고, 성대결절로 변한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쉼 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직원들이 공공건축 설계를 주저할 때, 그는 결연히 직원들의 손을 잡아 끌었다. 평생 월세인 다가구 빌라에서 단출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축을 매개로 사람과 자연을 포개다
정기용에게 무주는, 그리고 무주에 정기용은 서로 각별하다. 땅이 좋으면 무작정 설계를 했다는 그는 10여년간 무주에서 30여채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노베이션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감응의 건축> 에서 고백하고 있다. "무주에서 1996년부터 10여년간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 작업에 매달리면서 30여개 건축을 다루는 일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 감응의>
권위적이며 군림하는 면사무소가 아니라, 주민들이 제집처럼 편안히 머무는 면민의 집을 생각하며 개축한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넉넉한 덕유산과 너른 들판이 있는 자연에 사람이 조화롭게 포개어 살기를 바라며 지은 자연친화적인 건물이다.
"안성면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구릉진 것이 특징이다. 구릉은 천을 펼쳤다가 땅에 내려놓으면 살그머니 나타나는 옅은 주름처럼 편안하게 땅에 펼쳐져 있다. 그 지형 위로는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농지와 벌판에 적절히 포진해있다."(<감응의 건축> 에서) 감응의>
내부로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여러 개의 창이 대신한 이곳은 햇살로 가득하다. 처음엔 넓었다가 점점 좁아지는 계단의 너비는 이채롭고,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달리 보이는 덕유산의 풍광은 인상적이다.
"정 선생님은 사람의 얼굴처럼 다양한 표정의 건축이길 원하셨어요.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완전히 허물 수 없었기 때문에 건물의 중심축을 엇각으로 만들어 표정과 리듬감을 부여했죠. 2층에 올라가면 이 엇각의 창을 통해 덕유산이 한 눈에 보입니다."
창들 모두가 덕유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입체 액자인 셈이다. 그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의 공통점 중 하나는 창문을 통한 액자 효과. 건물 안팎의 경계이자 동시에 이들을 연결하는 매개물인 창문은 외부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창문의 프레임은 카메라가 줌인 하듯이 풍경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창이라는 프레임이 없으면 자기 앞에 있는 산은 그저 수많은 산 중의 하나일 것이다. 풍경과 나 사이의 관계 설정 또한 불가능해진다."(<감응의 건축> 에서) 감응의>
주민자치센터에는 또 다른 주민들의 일상이 덧대어진다. 목욕 한번 하려면 봉고차 타고 대전까지 나가야 했던 주민들을 위해 센터 안에 목욕탕을 들였다. 홀수날은 남탕, 짝수날은 여탕으로 65세 이상은 1,000원, 그 미만은 1,500원의 이용료를 낸다. 중앙 문에서 목욕탕으로 향하는 복도엔 치과, 내과 등 보건소가 자리했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밖으로 나온 김 소장은 붉은색 벽돌로 지은 복지관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말을 이었다. "정 선생님이 지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붉은 벽돌과 푸른 담쟁이 넝쿨이 참 멋지게 어우러졌죠. 건물은 사람 혼자 완성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식물이 건축을 아름답게 완성할 때가 있죠. 정 선생님도 이런 면에 주목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주 공설운동장의 등나무 스탠드다. 고인은 무주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인 프로젝트로 그곳을 꼽는다.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내게 일깨워준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게 한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응의 건축> 에서) 감응의>
공설운동장의 중앙엔 푸른 잔디밭이, 의자가 놓인 사면의 스탠드 위에 등나무가 빼곡히 자랐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만개하는 보라색 등꽃은 봄날의 장관이다. "행사 때마다 주민들의 참석률이 낮은 이유가 뜨거운 햇볕 때문이었대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3시간 만에 스케치를 마치셨죠." 하늘로 뻗쳐 제멋대로 자라던 등나무가 살 집을, 그는 등나무와 같은 굵기의 철봉으로 엮어 만들었다. '건축은 홀연히 사라지고 자연이 오롯이 주인공으로 남은' 이곳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등나무와 드문드문 남아있는 등꽃이 뒤늦게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을 선물하다
무주에서 고인의 손길이 닿은 건물은 기본 설계한 것까지 합하면 60여채에 이른다. 그러나 설계 변경된 것이 많아 32채만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아이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부터 죽은 이들이 머무는 납골당까지 그 폭도 넓다. 군 단위의 작은 지역에 삶과 죽음의 공간을 모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무주 추모의 집'은 그가 지은 유일한 영혼의 안식처다. 무주 끝 동쪽 언덕, 공동묘지와 인삼밭이 있는 곳에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공간 중 하나인,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이 자리한다. 모든 식물은 태양을 보며 자라지만 인삼은 검은색의 차광막 아래 그늘에서 자란다는 점에 그는 주목했다. 추모의 집 지붕이 인삼밭의 검은 차광막과 닮은 까닭이다.
"납골당은 유골을 항아리에 보존하는 곳이지만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이기도 하죠. 출입구에서 기도실에 이르는 직선의 복도 천장에는 작은 창을 두어 빛이 안으로 스미게 했어요."
자연채광으로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긴 복도를 고인은 '영혼의 길'이라 명명했다. 복도의 한쪽엔 무주의 풍광이 내다 보이는 창이 자리한다. 당신이 살던 곳을 바라보며 산 자를 축복해달라는 의미다. 밖에서 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은 삶과 죽음의 공간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 선생님은 죽음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길 원하셨죠. 당신이 돌아가실 때도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있다. 삶과 건축이 다르지 않았던 그의 흔적은 무주에 남아 깊은 울림을 준다. "건축가는 한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이자 한 사회의 모습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 기로에서 이런 건축의 방향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은 이 시대 건축가의 책무를 일깨운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5월의 무주. '공간의 시인'으로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고 감응하는 건축에 평생을 헌신했던 그가 그리워졌다.
무주=이인선기자 kelly@hk.co.kr
■ 원형 훼손된 '무주 프로젝트'… 그럼에도 그곳에 가야 할 이유
건축가 정기용의 '그곳'을 준비하면서 한 달 전부터 기용건축 대표인 김병옥 소장과 어디를 소개하면 좋을지를 상의했다. 한국 공공건축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만한 전북 무주가 첫 손에 꼽혔지만, '무주 프로젝트' 결과물 가운데 현 정부가 주도하는 녹색성장 정책과 관계기관의 관리 소홀로 훼손된 곳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 나오듯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옥상엔 위압적인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됐고, 공설운동장 한쪽 면에도 등나무가 낮 동안 햇빛을 볼 수 없을 만큼 큰 태양열 집열판이 자리 잡았다.
그뿐 아니다. 무주 서창마을 적상산 기슭,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적상산의 절경이 어우러진 향토박물관은 7년 넘게 방치돼 있다가 최근에야 서창 관광안내소 겸 아트갤러리로 꾸며졌다. 그러나 두 동의 건물 중 작은 별채는 아직도 쓰임새를 찾지 못했다.
종합복지관의 유리로 둘러싸인 중정(中庭)은 보자마자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빛도 볼 수 있었던 그곳엔 현재 모자 같은 태양열 집열판이 씌워져 있다. 그리고 본래 옥상이던 곳에도 거대한 지붕이 올라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가 향한 곳은 무주군이었다. '말하는 건축가'를 본 관객들이 개인적으로 정기용 건축가의 발자취를 따라 무주로 나선 것과 어쩌면 같은 이유다.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의 말대로 "한 명의 건축가가 하나의 지자체에 이렇게 많은 공공건축을 남긴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김 전 교수도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와 공동기획으로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이 탄생한 무주로 청취자들과 함께 북 투어를 다녀왔다. 그곳을 둘러본 김 전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탈리아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 마을 하나를 내주면서까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했는데, 무주군은 왜 자연스럽게 태동한 이곳만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지 의문이다." 감응의>
무주=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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