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마을 이장에서 군수를 거쳐 경남도지사까지 오른 이력이 말해주듯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김 전 지사는 1959년 4월10일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태어났다. 빈농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1977년 남해종합고를 졸업하고 국민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2년간 마늘농사를 하다가 79년 경북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87년 졸업했다.
그는 1986년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가입해 활동하다 신한민주당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었다.
김 전 지사는 이후 고향인 남해에서 농민운동에 주력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중의당 후보로 남해ㆍ하동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같은 해 29세의 나이로 이어리 이장으로 선출돼 2년간 활동했고, 36세 때인 1995년 무소속으로 나선 남해군수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전국 최연소 단체장이 됐다. 1998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02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나선 경남지사 선거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3월 그는 참여정부 첫 행정자치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학력 파괴', '경력 파괴' 등의 상징적 인물로 '리틀 노무현'이란 별칭까지 얻었으나 한국대학생총연합의 미군 부대 기습 시위 사건이 터져 6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부터는 출마와 낙선이 반복되는 시절이었다. 2004년과 2008년 총선에서는 각각 열린우리당과 무소속으로 고향 지역에서 낙선했고,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재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2007년에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다 2010년 6월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재기를 이뤄냈다.
그의 서민적 이미지는 가족들의 생활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큰누나는 서울 대림시장에서 40년 넘게 생선 장사를 하고 있고 큰 형은 서독에서 광부 생활을 했다. 또 둘째 형은 회사 경비원, 셋째 형은 이라크 노동자 출신이고 장모는 남해읍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다.
가족은 부인 채정자(51)씨와 딸 서연(24ㆍ회사원), 아들 도완(23ㆍ영국 유학 중)씨 등 1남1녀가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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