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007년 대선 당시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BBK 가짜편지' 사건을 일으킨 주범으로 양승덕(59) 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을 지목했다. 가짜편지를 통해 출세를 노린 양씨의 욕심이 모든 논란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12일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검찰에 따르면 사건은 김경준(46ㆍ구속)씨의 미국 LA구치소 동료였던 신경화씨가 김씨로부터 "BBK 주인은 이명박이고, 관련 자료를 가지고 한국에 송환되면 정치권의 도움으로 석방될 예정이다"는 취지의 말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신경화씨는 동생 신명(51)씨에게 이 같은 내용을 말했고, 신씨는 김씨의 말을 이용해 형을 구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평소 '아버지처럼 따르던' 양승덕 실장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 때 대통합민주신당 측이 신씨에게 "신경화씨 일을 도와주겠다"며 접촉을 시도했고, 신씨는 양씨에게 민주신당 측 인사들을 만나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부탁을 받은 양씨는 2007년 11월5일경 민주신당 관계자들을 만나 신명화씨에 대한 무료변론 약속 각서와 함께 당 관계자들의 명함을 받는다. 이 만남을 계기로 양씨가 당시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았던 한나라당 측에 이 사실을 알려 정치적 대가를 얻기로 결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로 양씨는 대학원 재학 당시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김병진(66) 당시 MB대선캠프 상임특보(현 두원공대 총장)를 만나 신경화씨의 진술 내용을 전하면서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김 특보는 강모 MB캠프 특보의 소개로 은진수(51ㆍ구속기소)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BBK팀장을 만나 기획입국설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양씨와 김 특보의 예상과 달리 은씨는 "내용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다. 다급해진 양씨는 신씨에게 들었던 내용을 근거로 가짜편지 초안을 컴퓨터 파일로 작성했다. 초안에는 "자네가 큰집(청와대 혹은 대통합민주신당)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한다"며 김씨가 당시 여권과 모종의 약속을 하고 입국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양씨는 이 초안을 같은 해 11월9일 신씨에게 넘기면서 자필로 가짜편지를 쓰라고 지시했고, 신씨는 다음날 형 신경화씨가 쓴 것처럼 편지를 써 양씨에게 건넸다.
양씨는 가짜편지를 김 특보를 통해 은씨에게 전했고, 가짜편지를 본 은씨는 같은 해 12월11일경 홍준표(58) 당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에게 가짜편지를 통해 기획입국설을 제기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홍 위원장은 같은 달 13일 가짜편지를 공개, 기획입국설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다.
가짜편지를 신경화씨가 작성한 것으로 믿고 있던 한나라당 측은 양씨가 가짜편지 전달 대가로 교육계 관변단체의 감사 자리를 요구하자 실제로 양씨를 추천했지만, 양씨 개인 비리 등의 문제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씨는 또 편지 공개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과정에서 신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상득, 최시중, 신기옥(이명박 대통령 손윗동서) 등이 핸들링하고 있으니 가서 조사받아라"는 등의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흐름과 통화내역 등 관련자들의 모든 진술을 분석하면, 양씨가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기 위해 위(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분명히 확인된다"며 "배후가 있어서 위에서 지시했다면 은씨가 제보를 거절해 한 달이나 더 시간이 걸렸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씨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가짜편지의 초안을 작성해 신씨에게 자필로 쓰라고 한 적이 없다고 검찰 조사에서 분명히 말했고, 신씨와 대질도 했다"며 "내가 지시자라면 검찰이 왜 나를 무혐의 처분했겠냐"고 반박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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