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일본 국제대의 김정부 교수와 함께 4월 문학동네에서 나온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이 글은 6월26일자 한국일보 <삶과 문화> 란에 실린 인하대 황승식교수의 '왜 전라도 사투리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 대한 옮긴이들의 반론이다. 삶과> 헨리에타>
칼럼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지만, 옮긴이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결국 펜을 들기로 했다. 나아가 다른 번역가들이 해외 문학작품을 우리나라 특정 사투리로 옮기는 것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원저자인 레베카 스클루트는 흑인들의 대화와 어투를 생생히 살려 내고 있다. 그 이유로 저자는 책의 머리글에서 "사람들의 말투를 꾸미거나 말한 내용을 바꾼다면 그건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 그들의 경험, 그리고 그들의 실제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라는 헨리에타의 친척의 말을 들고 있다.
옮긴이들도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옮기는 사람이 원래 대화체의 어투나 표현을 편의적으로 바꾼다면 말하는 사람과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과 지인 등 흑인들의 대화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처음에는 옮긴이들에게 익숙하고 또 자부심도 갖고 있는 강원 영동지방 사투리로 해보았다. 하지만 영동지방 사투리는 다소 투박한 낱말이 많고, 더구나 특유의 억양이 활자에서는 생생히 살아나지 않는 탓에 흑인들의 대화를 옮기기에는 결국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문학동네 편집자와 다시 상의했고, 부당하게 차별 받으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흑인들의 정서와 강인함을 표현하는 데에는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전라도 사투리가 제격이라고 보았다. 또한 헨리에타 가족들의 온화한 성정을 표현하자면 말투에서 툭툭 끊기는 맛이 나는 경상도나 강원도 사투리 보다는 낱말넘김이 매끄럽고 정감 어린 전라도 사투리가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국남부 흑인들의 대화체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직접 절감했다. 하지만 우리말을 가장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역자들이 알고 있는 안정효 선생이 <뿌리> 의 흑인영어를 옮기면서 느낀 고충이나, <안녕, 내 사랑> 이라는 소설에서 흑인 바텐더 말투를 충청도 사투리로 살려낸 박현주 선생의 의도도 옮긴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또한 영어권의 사투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많은 전문번역가들의 생각과도 같다고 믿는다. 이는 문학작품의 순수성만큼이나 정치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다른 문화의 특정 언어와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 사투리 사이에 어떤 언어학적인 유사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원저의 느낌과 감동을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 칼럼의 필자가 언급한 '정치적으로 눈치를 봐서 차리는 예의', 즉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옮긴이들이 전문번역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번역을 하면서 정치적 고려에서 특정지방의 사투리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 숱하게 나오는 '깜둥이'(nigger)란 표현을 오늘날 기준에 맞지 않는다 하여 정치적으로 점잖은,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으로 바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허클베리> 안녕,> 뿌리>
옮긴이들도 우리사회를 옥죄고 있는 지역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폭력성에 대해 유념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보는 눈이 일부 편향되어 있다는 데 대해서도 칼럼의 저자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녹여낸 사투리에 대해 그 사투리를 쓰는 사람으로서 응당 가져도 좋을 자부심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함도 자명하다. 이는 옮긴이들이 '감자바우'라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영동지방의 그 촌스러운 사투리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한 한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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