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도 담장도 없는 집 마당의 절반은 커다란 감나무 차지였다. "유미가 태어나던 무렵에 심은 거예요. 삼남매가 여기서 놀면서 컸죠. 집이 너무 낡았지요? 비 오면 여기저기 새고 금방 무너질 것 같아요.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집 새로 짓는다고 한푼 두푼 모으고 딸들도 월급 타서 보태고 했는데 유미가 그리 돼 버렸으니… 그냥 이렇게 삽니다."
지난달 30일 강원 속초시 자택에서 만난 황상기(57)씨는 "낡기도 했지만 유미 아플 때 기억이 구석구석 남아있는 집이 편치가 않다"고 했다. 그의 둘째 딸 유미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스물 두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황씨는 눈물을 닦고 싸움에 나섰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같은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여럿이란 말을 듣고 직업병이라고 확신했다"는 그는 피해자, 유족들을 모아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알렸고, 지난해 6월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지난 4월 발간된 만화책 <사람냄새> <먼지없는 방> (보리 발행)이 입소문을 타며 이들의 투쟁에 힘을 보탰다. 먼지없는> 사람냄새>
최근 산업보건분야 저명 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 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집중 조명했고,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
하지만 삼성과 근로복지공단 측은 여전히 "업무환경으로 인해 백혈병에 걸렸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성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뿌리깊은 삼성신화도 이들의 힘겨운 싸움에는 큰 걸림돌이다.
황씨는 되물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소한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는 알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근거 없는 억지라거나 승산 없는 무모한 싸움이라고 속단하기 전에, 먼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할 이유다.
"아빠, 얼른 돈 벌어 동생 대학 보낼게요"
유미는 착하고 순한 아이였어요. 친구들하고도 잘 지냈고, 말수가 적어 친구들 말을 잘 들어주는 쪽이었죠. 실업계 고등학교라 고3 때 진로를 정하는데, 유미 엄마나 저는 전문대 가라고 했어요. 기술 배워 사회 나가면 낫지 않느냐고. 그런데 유미가 고집을 부렸죠. 집안도 넉넉지 않은데 어설프게 대학 갔다 취업도 못하고 그러느니, 얼른 취직해 돈 벌겠다고. 그때 중1이던 남동생 대학 공부도 지가 시키겠다고. 삼성엔 상위 30%에 들어야 갈 수 있다는데, 그 학교에서 열 명쯤 갔어요. 2003년 10월 5일에 다같이 고속버스 타고 갔죠.
4주 교육 받고 기흥공장에 배치됐어요. 30년 넘게 택시운전만 한 제가 반도체가 뭔지 알았겠어요? 나중에 유미한테 듣고 역학조사 때 가봐서 안 건데, 운동장만한 큰 방에 베이(bayㆍ소작업실)가 24개 있어요. 베이마다 기계가 최소 한 대씩 있고 기계마다 2명이 붙어 일하는데, 유미는 3라인 1, 22, 24베이를 거쳐 마지막엔 3베이에서 웨이퍼(반도체 재료가 되는 둥근 판)를 화학물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작업을 했어요.
기숙사에서 지내며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오면 유미가 좋아하는 냉면도 같이 먹고, 지 엄마랑 동생 옷도 사주고 그랬어요. 별 말이 없으니 힘든지 어떤지도 몰랐죠.
(유미씨는 힘들고 서러웠던 일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하루는 이렇게 썼다. '엄마가 대학 가라고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이 회사 왔는데 지금 퇴사하면 엄마한테 미안해서 못하겠다. ㅠ_ㅠ 슬픈 책이라도 읽고서 아주 펑펑 울고 싶다. 나도 친구들처럼 대학가고 싶다.')
"엄마, 자꾸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2005년 5월 말쯤 유미가 전화가 와서 자꾸 어지럽고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는 거예요. 체했나 싶어 손톱 밑을 따봐라, 동네 병원에 가봐라 했죠. 그런데 아주대 병원에서 애 입원시키고는 빨리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급성골수성백혈병이래요. 하늘이 노랬죠. 아는 사람 애가 백혈병 걸려 죽었거든요. 유미한테는 치료 잘 하면 낫는다고 했다면서 달랬어요.
우환이 줄줄이 왔어요. 한달 1차 항암치료 하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애를 이상한 데 보내서 몹쓸 병 걸렸다'고 원망하며 밥을 안 잡수시더니 설사를 죽죽 하다 돌아가셨어요. 애 엄마도 우울증에 식도염 등 온갖 병에 걸려서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어요.
다행히 맞는 골수를 찾아 12월 6일 이식수술을 받았어요. 12월 말에 퇴원했는데, 한창 추울 때였죠. 이 병은 감기 같은 거 절대 걸리면 안되잖아요. 다른 사람 접촉하면 안되고, 밥도 아무 거나 못 먹고 밥그릇을 매번 소독해야 하고…. 내가 쉬는 날엔 요 앞 척산온천에 객실 얻어서 온천 물에 목욕시키고 택시에 태워 구경도 다녔어요. 유미도 카메라 갖고 다니면서 사진 찍고 하니까 몸이 조금씩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2006년 7월에 유미랑 3라인 3베이에서 한 조로 일했던 이숙영씨도 백혈병에 걸렸다더니 한달 좀 지나서 숨졌어요. 그때서야 이게 산업재해구나 싶었어요. 회사 과장이 병원에 왔길래 산재 얘기를 꺼냈는데,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어요. 사실 1차 항암치료 할 때 병원 복도에서 만난 아줌마들이 저쪽 병실에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걸린 사람이 있다고 했거든요. 병실 앞에 면회금지라고 써놓고 드나드는 사람도 없어 만나진 못했어요.(나중에 수소문 끝에 알아낸 그 환자는 2005년 7월 숨진 황민웅씨였다) 산재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갔죠.
"산재? 삼성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10월쯤 회사 인사과장이 집으로 찾아왔어요. 휴직기간이 끝나 사표를 써야 하는데 그 전에 회사에 바라는 게 있으면 얘기하래요. 산재 얘길 꺼냈더니, "아버님, 이 큰 회사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습니까?" 이래요. 내가 언제 이기겠다고 했냐, 또 내가 삼성을 어떻게 이기느냐 했더니, 다른 거 요구하래요. 그때까지 들어간 병원비가 8,000만원쯤 되는데 집 지으려고 모아놓은 돈 다 써버렸죠. 무슨 명목인지는 모르겠고 회사에서 통장으로 찔끔찔끔 넣어준 돈이 한 3,000만원쯤 됐어요. 유미 치료도 계속 해야 하니 5,000만원을 달라고 했죠. 알았다면서 사직서를 쓰라는데, 백지를 딱 접어서 유미 주민등록번호랑 이름만 받아갔어요. 그때가 송이철이었는데, 이웃 사는 친구한테 (오른 팔뚝 중간쯤을 왼손으로 잡으며)이만한 거 두 송이 얻어다 줬어요. 고맙다고.
며칠 뒤 유미가 밥을 잘 안 먹고 눈동자가 희미해져서 병원에 데려 갔더니 혈액 수치가 다 바닥으로 떨어져 있어요. 재발한 거죠. 열이 심해 20일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그 과장이 찾아왔어요. 다 죽어가는 우리 유미 걱정은 한마디도 없이 500만원밖에 없으니까 이것 갖고 해결하자는 거야. 분해서 한대 패주고 싶었지만, 당장 돈이 없으니 받았죠. 그런데 생각할수록 분한 거예요. 전화로 왜 산재 처리 안 해주냐고 욕을 퍼부었죠. 2007년 1월에는 부장이란 사람이 찾아와 협박을 하더라고. 유미는 이제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닌데 왜 자꾸 우리한테 뭐라고 하냐고. 기가 죽을 대로 죽어서 눈물만 나고… 그냥 나와버렸죠.
"유미가 떠났어요, 아빠 택시 뒷좌석에서…"
호소할 데를 찾아 나섰어요. 속초 한나라당 의원실에 갔지만 개인 회사 일에 관여할 수 없대요. KBS에 제보했어요. MBC나 SBS, 큰 신문사들은 삼성에서 광고 받아서 운영하니까 삼성에 나쁜 뉴스는 안 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 참, KBS에서 전화 받는 사람이 삼성에서 일하다 병 걸렸다는 증명을 받아오래요. 유미한테 인터넷 하는 거 좀 배워서 다시 제보할 데를 찾았어요. 우연히 연결된 '말'지 기자가 2월에 우리 집에서 하루 자면서 취재를 해갔는데, 월간지다 보니 4월호에 실렸어요. 유미가 세상 떠난 뒤였죠.
3월 6일 병원에서 치료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택시 뒷좌석을 침대처럼 꾸며서 유미를 눕히고 다녔는데, 원주 좀 못 미쳐서 유미가 "아이, 더워" 그래요. 창문을 조금 열었더니 이번에는 "아이, 추워" 그래요. 그러더니 원주 지나서 싸리재 고개를 올라가는데 헉헉 숨을 몰아 쉬어요. 급히 차 세우고 문을 열었는데 눈 뜬 채로 이미 숨이 넘어갔더라고. 유미 엄마는 막 우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어떻게 차를 몰아서 속초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요. 화장해서 유골을 울산바위 아래 작은 봉우리에 뿌렸어요. 불쌍한 우리 딸, 죽어서라도 공기 좋은 데서, 바다 바라다 보이는 데서 편히 쉬라고….
"10억쯤 해드릴 테니 가만히 계시죠"
연락도 안했는데 그 부장이 어떻게 알고 장례식장에 왔더라고. 장례를 잘 치르면 보상금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주겠대요. 그러고 3월 15일에 또 찾아왔는데 헛소리만 하길래 XX놈들아, 욕 해주고 나와버렸죠. 말지 보고 수원 지역신문 서너 군데서 기사를 실었어요. 기자들이 도와줘서 유인물 만들어 회사 앞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그런데 소용이 없더라고.
6월에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재 신청을 했어요. 6월 말쯤 조사를 받는데, 삼성 서류에는 유미가 다른 데서 라벨 붙이는 작업 하다가 3라인에서는 석 달만 일했다고 돼 있다는 거예요. 아니다, 줄곧 3라인에서 일했다고 했더니, 담당 직원이 서류로 책상을 탕탕 치면서 "삼성 같은 큰 회사가 사람 몇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서류를 올리겠냐"고 소리를 질러요. 이렇게는 안되겠다, 내 편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기자한테 부탁했어요. 8월쯤 다산인권센터 쪽 분하고 민주노총 경기본부 이종란 노무사를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9월에 한 역학조사도 완전 엉터리였어요. 그 전에 유미가 일했던 3라인 수리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어요. 유미 말로는 기계들 사이에 칸막이 같은 건 없고 방 안이 너무 더워서 마스크 벗고 일하다 혼난 적도 몇 번 있다고 했는데, 가보니까 칸막이 시설 다 해놓고 환기도 잘 되게 해놨어요. 이게 무슨 역학조사냐고 소리를 질렀죠. 그러고 나오는데 회사 안전그룹장이란 사람이 불러서 "한 10억 해드릴 테니 사회단체 사람들이든 누구든 상대하지 말라"고 그래요. 알았다고 하면서 속으론 "이놈들아 또 속을 줄 아냐" 했죠.
2007년 11월 20일 기흥공장 앞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당시 정식으로 산재 신청을 낸 피해자는 황유미씨 유족뿐. 소식이 알려지자 백혈병뿐 아니라 혈액암 뇌종양 등 각종 암과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피해 신고가 줄을 이었다. 대책위는 이듬해 2월 백혈병을 넘어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산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포괄하는 단체 '반올림'으로 발전했다. 올 6월 30일 현재 이 단체에 접수된 삼성 관련 피해 제보는 145명, 이 가운데 56명이 세상을 떠났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의 산재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씨는 2010년 1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지난해 6월 승소했다. 재판부는 "백혈병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정하여 판단할 수 있으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유미씨 동료였던 이숙영씨 유족도 승소했지만, 함께 소송을 낸 3명은 패소했다.
-승소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셨나요?
재판에서 삼성 측이 동원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억지 논리를 펴고, 우리 쪽에 유리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을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고 해서 100% 장담은 못했죠. 하지만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질 거라고 믿었어요. 같이 일하던 사람 둘이 똑 같은 병에 걸려 죽고, 그 공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병 걸리고 죽어나갔는데 그게 어떻게 산재가 아닐 수 있어요.
유미 죽기 전에 약속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걸린 병 아니고 회사 다니다 걸린 거니까 반드시 그 이유를 밝히겠다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구나, 싶었어요.
-공단에서 항소했는데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없을까요?
올해 안에 선고가 날 것 같은데, 1심보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봐요. 올 2월에 고용노동부(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삼성 등 3개 반도체공장 정밀 작업환경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자동공정으로 바뀐 현재 작업환경에서도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1급 발암물질이 발생한다고 해요. 그런데 수치는 낮대요.(반올림에선 '검출량이 노출기준보다 낮아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는 연구원 측 발표에 대해 '발암물질은 극히 낮은 수준에서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것조차 없었던 1심에서도 이겼는데,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결과까지 있으니 유리한 거죠.
-'삼성공화국'이란 말도 있는데, 삼성 상대로 싸우면서 두렵지는 않았나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어요. 죽기 살기로 했죠. 애 병 나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애 엄마 또 아프고, 우리 집은 다 망했으니 나도 죽여라,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나도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사흘 일하고 하루 쉬는 날 서울 쫓아가서 싸우고 새벽 한 두 시에 돌아와 조금 눈 붙이고 일하러 나가고…. 친구들, 친척들 다 말리죠. 삼성하고 싸워 봐야 결국 지고 상처만 더 받는다고. 그렇지만 억울한 사람 더 안 나오게 잘못된 건 고쳐야지, 나만 보상금 넙죽 받고 끝낼 수는 없죠. 용기가 없어서 싸우러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데, 그거 생각하면 힘들어할 겨를도 없어요.
-삼성전자 이익이 몇 조가 났다, 이런 보도 나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속상하죠. 첨단 기술도 좋고 돈도 좋지만, 이게 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있는 거 아녜요? 그런데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병 들어 죽어가게 하면서 그 많은 돈 끌어 모으면 그게 뭡니까. 노동조합 못 하게 하는 것도 문제예요. 노조가 있었으면, 제대로 된 노조라면 위험한 화학물질이나 방사선 마구 쓰는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거고, 그래서 고쳐졌으면 우리 유미도 병 안 걸리고 죽지도 않았을 거예요.
-삼성 이건희 회장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많겠어요.
비꼬아 주고도 싶지만, 바른 말만 하자면 은둔생활 그만 하라 하고 싶어요. 갇혀 있는 생활을 너무 길게 하니까 갇힌 생각밖에 할 수 없는 거죠. 열린 공간으로 나와서 사회와 국민과 노동자와 소통하면 이런 문제도 안 생길 거 아닙니까. 꼭꼭 숨어살면서 집이나 회사 지키는 경비들 엄청나게 두고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해주는 심복들 관리하느라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그 돈, 사회와 소통하는데 써서 존경 받는 CEO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우리 속담에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는 말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직업병을 감추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할수록 진실을 밝히려는 노동자의 힘, 사회단체의 힘도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나 혼자 싸움으로 시작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들어가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겨요. 절대 지면 안 돼요.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며 잘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해요.
이희정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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