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1395~1441)의 대표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와 신부 조반나 체나미의 혼인 서약식을 그린 초상화다. 당시 혼인 서약에는 반드시 증인을 세워야 했는데, 화가는 증인을 부부 뒷벽에 걸려있는 볼록거울에 그려 넣었다. 바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이다. 얀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볼록거울 위에 'Johannes de eyck fuit. 1434'(반 에이크 여기 있었노라. 1434)란 서명까지 남겨 놓았다.
이장욱(44)의 단편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그림 속 화가, 혼인 서약의 증인을 작가로 설정한 작품이다. 얀의 '…결혼식'이 15세기 사회 풍속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면, 이장욱의 '…결혼식'은 21세기 '중년 남성들의 제국, 대한민국'의 풍속을 짧은 이야기에 담았다. 이야기 속 신랑은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는 치매 노인, 신부는 이 노인의 살림을 돌보는 30대 중반 가사도우미다. 이 그로테스크한 결혼식에 참석할 증인에게, 신부가 청첩장을 보낸다.
'바로 당신이 와주었으면 해. 작가라는 당신이.'
(청첩장의) 독자이자 (직업이) 작가인 증인에게 보낸 꽤 긴 청첩장 형식으로 쓴 이 소설은, 이장욱 소설의 특장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작가는 단편 '변희봉', '곡란' 등 이전 작품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겹침을 통해 현대 사회를 묘파했다. 이 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견 혹은 관습적 의식과 다른 삶을 사는 인물로 '젊은 도우미'를, 삶의 의지가 제로에 도달한 인물로 치매 노인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특이한 인물이 만날 때 뭘 할 수 있을까? 저는 사랑하고 결혼을 했으면 했어요. 소설을 쓰면서 처음 중매를 했는데(웃음),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그림은 이야기의 프레임 역할을 했죠."
화자인 도우미는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내는 것이 '이 세계의 율법'이라 생각하는 극단적 회의론자. '꼬일 대로 꼬인 이혼녀'인 그녀는 '이 삶과 세계에 대해 어떤 의지도 욕망도 가져본 적 없'다는 이유로 2년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집주인을 사랑하고, 결혼식을 감행하려 한다.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된 사연과 독특하면서도 일방적인 연애가 소설의 줄거리. 이 과정에서 여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급진적 사고를 날 것으로 내뱉는다. 이 씨는 "작가인 저와 독립된, 독자적 깊이가 있는 인물"이라며 "(인물의 독백을 쓰는 것은) 내가 허물어지고 작가로 균열을 느끼는 걸 감수하면서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한국문단에서 시와 소설, 평론을 완벽하게 별개의 작품으로 쓰는 거의 유일한 문인이다. 러시아문학의 정통한 연구자이자 2000년대 중반 주목 받은 시인들의 낯선 화법을 옹호하며 시단에 '미래파 논쟁'을 일으킨 평론가이고, 그 스스로 탁월한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씨는 "시를 쓰면서는 비평, 희곡 등 다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시 쓰기와 겸업할 수 있는 것은 소설 쓰기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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