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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지 ‘가로수’ 발판으로 1조 그룹 오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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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지 ‘가로수’ 발판으로 1조 그룹 오너가 되다

입력
2012.11.2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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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이의범 SG그룹 회장은 지난 10년간 성장가도를 달렸다. 연륜이 있는 제조업체들을 하나 둘씩 인수합병하면서 단숨에 중견그룹을 일궈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운동권 출신에서 생활정보지 가로수의 창업자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경영자다. 변신의 귀재인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매출 1조 원대를 바라보는 중견그룹의 오너로 도약했는지 포춘코리아가 상세히 살펴봤다.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SG그룹의 사명은 낯설다. SG세계물산, SG충남방적, KM&I 등 핵심 계열사 이름을 들으면 더 생소하다. SG라는 사명 만으로 주요 사업과 규모를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SG그룹은 지주회사인 SG&G를 통해 올해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 순위에서 352위로 당당하게 간판을 올렸다. 사실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 리스트를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300위 뒤로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의 이름들이 수두룩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SG그룹도 그러한 기업들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기업은 삼성, 현대차, LG, SK 등 주요 그룹이지만, SG그룹과 같은 알짜 기업들이 이들과 협심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SG그룹은 2000년 이후 제조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하며 중견기업으로 거침없는 성장을 이뤄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IT, 금융 등 첨단산업에 몰려간 사이 SG그룹은 섬유, 피혁, 제조 등 2차 산업의 토종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며 성장가도를 달렸던 것이다.

이러한 SG그룹의 한 우물파기 전략은 주효했다. 지주회사인 SG&G는 지난해 매출과 당기순이익에서 각각 9,311억 원과 198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 매출 1조 원 돌파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과연 SG그룹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가로수 주인에서 그룹 오너로 변신하다

단기간에 SG그룹을 매출 1조 원대로 성장시킨 주인공은 바로 이의범(48) 회장이다. 지금은 직원 7,500여 명을 이끄는 중견그룹의 오너지만, 그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직원이 몇 명 안 되는 작은 벤처기업의 CEO였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정보지 ‘가로수’를 1991년에 발간하며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지방 중소도시에는 벼룩시장, 교차로와 같은 생활정보지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반면 서울에는 생활정보지가 싹을 트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워낙 지역이 방대한 터라 벤처 자본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의범 회장은 과감하게 서울을 공략했다.

이의범 회장은 포춘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활정보지 사업은 실수요자와 실공급자간 직거래 풍토를 조성해 최소의 비용으로 재화와 용역의 교류를 촉진하는 게 핵심입니다. 지역기반의 영세 소상공인들이 이용 가능한 홍보공간을 마련한다면 생활경제신문이 지역중심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유력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회장은 가로수를 지금의 잡코리아와 같은 정보교류 사이트처럼 사람과 사람, 사람과 회사를 연결해주는 최고의 소통창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소비자광고를 무료로 싣다 보니 자금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익성이 악화되다 보니 동업자와 직원들마저 하나 둘씩 떠나갔다. 결국 창업 3년 만에 그는 최대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마지막 전략카드를 뽑아 들었다. 무료로 게재하던 광고를 유료로 전환한 것이다. 천만다행이 유료화 전략은 시장에 적중했다. 소비자들이 오히려 유료 정보에 신뢰와 관심을 갖고 생활정보지 가운데 가로수를 더욱 챙겨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이었다. 위기는 또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서울지역에만 700여 개의 생활정보지가 넘쳐났다. 중앙일간지 마저 물량공세를 펼치며 이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경쟁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의범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로수만의 저인망식 광고영업을 기반으로 경쟁지를 물리치며 선두를 지켜나갔다. 생활정보지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보니 가로수를 필두로 벼룩시장과 교차로가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다른 사업자가 들어올 수 없는 3강 체제를 확실히 지킨 셈이다.

2000년 4월 이의범 회장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가로수의 사명을 가로수닷컴으로 바꿔 달며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상장의 기쁨도 잠시 경영환경이 다시 악화됐다. 2002년부터 인터넷 보급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생활정보의 전달 영역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하게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의범 회장은 말했다. “생활정보지 광고수요가 크게 줄면서 가로수닷컴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회사가 존속하기 위해서 사업다각화, 우량기업 인수 등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했죠. 특히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을 모색했습니다.”

이의범 회장은 덧붙인다. “돌이켜보면 SG그룹이 지금의 규모로까지 성장한 가장 큰 동기는 역설적이게도 회사의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가로수닷컴의 경영상의 위기였어요.” 코스닥 진입 이후 수백 원의 자금을 조달한 이의범 회장은 우량기업들을 차례로 인수합병 하면서 몸집을 부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의범 회장은 1980년대 운동권 활동에 빠져있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재학 중에는 데모를 주도하다 무기정학을 맞은 경험도 있다. 군 제대 후 위장취업은 물론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뛸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를 운동권 출신에서 경영자로 돌려세운 결정적인 배경은 뭘까. 그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나날이 변모하는 한국경제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체제를 비판하기 보다 변하는 세상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다고 회고했다.

1990년 KT에 입사한 뒤 바로 벤처 창업의 길에 뛰어든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이의범 회장은 말했다. “첫 직장인 KT를 다니면서 중산층으로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무엇인가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넘쳐 있는 상황이었죠. 제가 가로수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변신을 발판으로 이 회장은 창업 10년 만에 가로수의 주인에서 중견기업의 오너로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굴뚝산업에서 성장 열쇠를 발견하다

이의범 회장은 말했다. “인수합병을 검토할 때마다 굴뚝산업의 우량기업들을 눈 여겨 봤습니다. 제가 인수한 회사들은 대부분 오랜 역사만큼 탄탄한 소싱과 마케팅 네트워크 그리고 기존의 우수한 연구인력들이 있었습니다. 경영상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면 다시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이의범 회장의 M&A 전략으로 지난 10년간 인수한 기업은 KM&I, SG세계물산, SG충남방적, 고려피혁 등 현재 SG그룹이 보유한 대다수 계열사들이다. 이 가운데 세계물산과 충남방적은 과거 대우그룹의 주요 계열사로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명맥이 있는 기업들이다. 그는 2000년 초반 자동차 산업의 성장세를 직감하고 2003년 무렵 자동차 시트를 생산하는 부품업체 KM&I를 인수했다. 이들 KM&I, SG세계물산, SG충남방적은 매출과 수익 면에서 SG그룹의 성장을 이끄는 삼두마차 역할을 한다.

이의범 회장은 설명했다. “KM&I는 한국GM이 위치한 인천, 군산, 창원에 공장이 붙어 있기 때문에 물류나 협력적인 측면에서 유리한 사업환경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GM의 성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GM의 품질이 올라가는데 협력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죠.” 한국GM은 올해로 한국진출 10년을 맞았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텃세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1,500만 대의 차량을 판매하며 질주를 거듭했다. KM&I는 그동안 한국GM의 성과에 일조하며 동반 성장한 셈이다.

SG그룹에는 세계로 뻗어가는 패션 브랜드도 포진해 있다. 이의범 회장은 말했다. “SG세계물산은 자체 브랜드인 BASSO, BASSO home, af.f.z 등을 보유했습니다. 주로 OEM 제품을 생산하는 의류수출사업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 OEM 부분도 역량을 키워 ODM제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품질과 기술력을 가지게 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ODM업체로 혁신하겠다는 이 회장의 말은 SG세계물산을 단순한 생산업체에서 개발업체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매출 1조원 초우량 그룹을 꿈꾸다

이의범 회장은 인수 합병한 계열사마다 대표이사를 다 맡고 있지는 않다. 인수합병을 검토할 때부터 해당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한 가지 예로 그룹의 핵심기업인 KM&I의 대표이사는 제가 아닙니다. 제가 인수를 했다고 경영까지 제가 잘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해당 산업분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경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들도 되도록 해당 사업의 임원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듣고 따르는 편입니다.”

이의범 회장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은 SG그룹의 계열사들이 저마다 자사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 그는 회사의 미래가치보다 현재가치에 주목하는 경영전략가에 가깝다. 2000년대 M&A 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신생 IT벤처보다 연륜이 있는 제조기업을 선호한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말했다. “인수합병한 기업들이 대부분 법정관리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이었습니다. 모두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일해준 임직원들이 아니었다면 그 기업들의 정상화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의범 회장은 10년 단위로 대대적인 혁신을 일궈냈다. 첫 직장인 KT를 그만두고 1991년 생활정보지 가로수를 창업해 2000년 가로수닷컴을 코스닥에 상장했고 또 불과 10년 만에 다시 1조 원을 바라보는 중견그룹 반열에 회사를 올려놓았다. 연결재무제표 적용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 리스트에 모응?공개한 SG그룹이 다음 10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SG그룹 프로파일

올해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순위: 352위

매출: 9,311억 원(2011년 기준)

이익: 198억 원(2011년 기준)

본사: 서울

직원: 7,5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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